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일세. 이 소설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여 러시아 최고 상류사회 구성원인 항소법원 판사가 되었지만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하네. 의사로부터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기 시작하지.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을 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바로 이런 명백한 사실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되지 자신에게는 도무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카이사르는 인간이니까, 일반적인 인간이니까 당연히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 자신은 카이사르도 아니고 일반적인 보통 사람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카이사르가 인간이어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게 당연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인 이반 일리치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야. 다른 누가 아닌 자기가 죽는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는 거지. 이반 일리치처럼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인도인의 정신적 지침서 중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에도 스승 크리슈나와 제자 아르주나의 흥미 있는 대화가 나오네. “세상의 모든 놀라움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게 무엇이냐?” “인간이 자기 주변에서 다른 모든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만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왜 우리의 삶에 중요할까? 루게릭병에 걸린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교수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게 되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역설적이지만, 그러게 되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게 되네. 이승에서의 삶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세속적인 욕망, 즉 노욕(老慾)에 찌든 추악한 노인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거지. 다음 달에 시작하는 새로운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처럼 일흔 살이 넘어서까지 권력이나 돈을 탐하는 염치없는 짓은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야.

사람이 늙고 죽는다는 것을 더 진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있는 통찰을 하는 사람일수록, 노년이 더 참되고 가치 있는 시기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네. 이왕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활동한 카톨릭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가 『삶과 나이』에서 말한 ‘올바른 죽음’을 맞이하는 게 좋겠지. 과르디니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다가 마침표를 찍는 ‘완결과 완성으로서의 죽음, 삶의 형상을 완전히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죽음’을 ‘올바른’ 죽음이라고 규정했네.

지난번 편지에서 양평에 마련한 묫자리에 자주 간다고 말했지. 며칠 전에도 갔는데 친구 집에서 옮겨 심은 야생화 앵초(櫻草)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더군. 붉은 앵초꽃을 보면서 망우(忘憂)의 시간을 갖고 내려왔네. 조선을 건국했던 이성계가 오늘의 동구릉 언저리에 자신의 묫자리를 정해놓고 “들어가 누울 자리를 정해 놓으니, 한시름 잊겠다”고 말한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더군. 카프카가 말했지. 삶이 소중한 이유는 삶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라고. 맞는 말일세. 누구나 늙는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는 걸 받아들이고 살면 삶이 훨씬 더 소중하고 즐거워진다는 걸 잊지 말고 살자.

마지막으로 권달웅 시인의 <망우리 길>일세. 언젠가는 누구나 걸어야 하는 길일세. “걷지 않아도 길은 이어진다. 떠나간 사람에게 마음을 주면서 흔들리는 풀꽃은 내일이면 하얗게 쓰러질 것이고 내일이면 흰 풀꽃 같은 사람들이 산으로 가 살 것이지만 사람들은 모든 길이 망우리로 이어져 있음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늘 걸어온 만큼 짧아진 길을 버려도 하루해는 영원한 길을 버리지 않는다. 깨끗하라, 깨끗하라, 오늘 하루 망우리 산기슭엔 누구를 위한 돌을 쪼으는지 아름다운 이름을 새기는 정소리가 가득하구나.// 고향으로 가는/ 장님으로 가는/ 망우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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