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1 20:39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대재앙으로 가는 북한 코로나… ’주는 기술‘ 필요할 때다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대재앙으로 가는 북한 코로나… ’주는 기술‘ 필요할 때다
  •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승인 2022.06.02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 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창궐 사태가 심상치 않다. 지난 4월 말 첫 발병이 확인된 이래 최대 하루 40만 명까지 치솟던 코로나 환자는 한 달여 만에 누적 환자 300만 명을 넘어섰다. 북한은 환자 발생 숫자가 10만 명대로 낮아졌다고 밝히면서 통제가능한 수준인 것처럼 관영 매체를 통해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게 우리 방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환자 확진을 위해 유전자증폭(PCR) 검사 체계 등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전무하다시피하다. ’확진‘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고 ’열이 나는 증세를 가진 사람‘이란 의미의 유열자로 표기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사망자 숫자도 신뢰할 수 없어 보인다. 5월 26일의 경우 하루 환자가 10만460명 발생했는데 사망자는 1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앞서 며칠째 ’사망자=0명‘을 고수하다 내놓은 수치다. 이렇게 하다 보니 치명률은 0.002%다. 다른 국가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통계조작의 의혹이 짙어진다.

안타까운 건 북한 주민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 코로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는 북한 인구 2,500만 명 가운데 40% 가량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사정은 수년째 나아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 주민이 우리의 기저질환자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북한 당국의 코로나 대처를 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코로나 발병 사실을 처음 확인한 직후인 5월 12일 열린 노동당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상방역에 파공(구멍)이 생겼다“며 간부들을 나무랐다.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평양의 약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약품이 부족하다거나 약품 판매원의 위생상태가 엉망이라며 질책했다. 코로나 대처가 엉망이었음을 북한 최고지도자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많은 책임은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한 2020년 1월 북중 교역로를 비롯한 모든 관문을 차단하고 봉쇄에 들어갔다. 중국으로부터의 필요한 물자 반입까지도 엄격히 제한할 정도로 철통 방역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가 크게 번지자 북한은 주민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코로나 방역 리더십을 찬양 선전하기 시작했다. 

2020년 10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밝혔다. 자신은 물론 당 간부와 참석 주민, 열병식 군인 등이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섣부른 코로나 종식 선언을 한 것이다.

이번 사태도 김정은 위원장의 패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정규군의 전신인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기념하겠다면서 4월 25일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과 군중집회를 열었다. 평양은 물론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청년학생과 군인 등이 동원됐다가 귀향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이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겠다면서 다시 불러 모아 수천 명 단위로 여러 차례 사진을 찍었다. 이때는 이미 북한 내에서 오미크론이 번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방역 고삐를 죄어야 할 시점에 최고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규모 인적 이동이 벌어진 건 코로나 확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뒤늦게 당 간부나 보건‧의료 담당자들을 질책해봐야 소용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북한은 김정은 찬양에 골몰한다. 노동당이 천리혜안의 예지로 코로나 위험성을 꿰뚫어봤다는 주장을 펼치며 김정은 위원장이 황해남도의 농촌에 보낸 약품으로 주민들이 불사조가 됐다는 식의 선전을 늘어놓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코로나 사태를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은 평양과 지방 도시를 완전봉쇄하고 확산을 막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하루 10만 명대의 신규환자 발생은 코로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김신곤(고려대 의대 교수)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은 5월 26일 열린 한 세미나에서 ”발열자 대부분이 오미크론 감염자라면 실제 감염은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앞으로 1개월 내에 전 인구가 감염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걸릴 대로 걸려 집단면역이 이뤄지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겪는 공포와 경제적 어려움 등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대북 소식통들은 코로나 봉쇄로 인해 북한 지방 도시에서 주민들이 식량부족과 생활의 어려움을 절박하게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빠듯한 살림에 비축된 식량이나 물품이 없는 상황에서 봉쇄의 장기화는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코로나 지원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중국으로부터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물량이나 물품 등에서 역부족일 공산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이 방문한 약국조차 제대로 된 진단키트나 치료약, 백신 등이 없다는 점에서다. 

북한 매체들도 코로나 관련 기사에서 ”고려약공장에서 오미자단물약과 승마칡뿌리알약 등을 대량생산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어 제대로 된 약품 생산이나 공급이 어려움을 시사했다. 고려약은 우리의 한방에 해당하며 제대로 된 양약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민간요법과 함께 고려약이 널리 쓰인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과 코로나 사태 등 인도적 분야에서는 대북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지만 인도적 지원 원칙은 변동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북한의 현재 상황이나 태도로 볼 때 우리의 제안에 덥석 호응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국면에서 결국 고통을 겪고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건 북한 주민이다. 백신을 지원받아도 이를 보관하고 유통한 제대로 된 냉장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열악한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속수무책인 것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핵심권력자들은 독재체제의 유지와 자존심 때문에 외부의 지원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의 코로나 사태가 매우 절박한 상황임을 감안해 우리 정부 당국과 국제사회도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주겠다고 말만하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할 게 아니라 대북지원을 성사시킬 수 있는 전략을 고민했으면 한다. 자존심 센 이웃을 상대하려면 베푸는 것도 ’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북한의 지도자와 통치세력은 밉지만 2,500만 주민의 생명과 삶은 더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