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이 청년세대의 체제 이탈을 막기 위한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이른바 ‘장마당 세대’로도 불리는 이들 세대가 철저한 통제 속에 일사불란한 충성을 요구하는 김정은식 통치에 반감을 갖거나 체제이반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관영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한은 지난 27일 이른바 ‘전승절’을 계기로 청년·학생 세대를 겨냥한 사상단속과 선전·선동성 캠페인에 주력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체결 69주년인 이날을 신세대의 사상 이완을 다잡는데 활용한 것이다.

노동신문은 전승절 당일 사설에서 ”청년들은 전승세대의 훌륭한 정신과 기풍을 따라 배워 자기 수령, 자기 조국, 자기 제도를 끝없이 빛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열렬한 애국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다른 기사에서는 ”수령 결사옹위 정신, 애국주의 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을 핵으로 하는 조국수호 정신은 오늘 새 세대들이 이어받아야 할 가장 값 높은 사상 정신적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승리한 것으로 왜곡 선전하고 있다. 이번 전승절에는 6·25때 참전했던 군인들을 평양으로 불러 8차 전국노병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청년세대들을 겨냥한 반미·반제국주의 선전·선동을 파상적으로 펼친 것이다.

이른바 ‘전승세대‘로 불리는 참전 노병들을 내세워 청년층에게 ”미제와 계급적 원수들의 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철리를 항상 명심하라“는 등의 세뇌교육을 시키는 건 대표적이다. 아예 이들 노병과 만나 우리의 국립현충원에 해당하는 ’인민군열사묘‘ 등을 참배하고 대화를 나누는 상봉모임도 이어졌다.

이들 세대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급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승절 행사 연설에서 ”전승세대의 영웅정신을 훌륭히 이어받아 조국의 백년대계를 위대한 승리로 이어놓아야 할 계승자·교대자들은 우리 새세대들“이라며 ”우리 당과 정부는 수백만 청년들을 조국해방전쟁 참전자들이 물려준 정신적 바통을 견결히 이어나가는 열혈의 혁명가, 애국투사로 준비시키는데 언제나 선차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유사한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식량난으로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를 지칭한다. 김정은 세습 정권에 대한 충성이나 북한 체제 유지보다는 개인의 부를 축적하거나 행복을 추구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세대다. 고난의 행군 당시 노동당의 배급이 끊겨 장마당을 통해 먹을 것과 생필품을 조달해야 했던 만큼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부채의식도 덜하다는 점 역시 장마당 세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북한의 청년·학생 세대는 기성세대가 보여준 노동당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과 김정은 3대 세습체제에 대한 충성 등에서 결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커서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가요를 즐기고 트렌디한 남한 물품에 대한 애착도 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북한에서 젊은층들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면서 큰 인기몰이를 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남한의 재벌 상속녀와 북한의 특급장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스토리 속에는 한류문화에 푹 빠진 북한 고위층의 모습이 드려진다. 결혼식을 위해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북한 특권층의 모녀는 남한에서 몰래 들여간 강남 웨딩숍의 브로셔에 선망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실태를 잘 간파하고 있는 듯 김정은 위원장은 청년세대의 사상교양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노동당 간부들에게 주기적으로 신세대의 이탈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어쩌면 올해 38살 난 김정은 위원장 자신이 MZ세대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청년세대의 특성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청년세대 교육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다. 지난해 4월 북한의 청년조직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에 보낸 서한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고난의 시기에 나서 자란 지금의 청년 세대가 우리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체험과 표상이 부족해지면서 일부 잘못된 인식까지 가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3대혁명 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서는 ”알속(알맹이)은 없고 형태적인 틀거리(모양새)만 있다“며 젊은 세대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생산현장들에 나가 3대혁명을 추진하고 있는 대학졸업생 출신의 활동이 저조하다“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진 대졸 청년층에게 경고를 보냈다.

청년층 이탈에 대한 북한 당국의 극단적인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지시로 2020년 12월에는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이 만들어졌다. 이는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북한 주민의 한류문화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 할 수 있다.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단순히 보기만 해도 5~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이를 북한에 반입하거나 유통하고 시청할 수 있는 조직을 하면 무기에서 사형을 내리는 혹독한 조항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청년세대들은 여전히 한류문화를 탐닉하고 드라마 속 한국사회를 동경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탈북인사들의 전언이다. 특별단속 조직인 ’반사회주의그루빠‘에 걸려 처벌받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미 한류에 빠진 청년세대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얘기다.

북한은 세계화와 개방체제·다원화라는 국제적 추세와 역행하는 극단적인 통제와 폐쇄 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인터넷 불모지이기도 하다. 주민들뿐 아니라 고위 간부들에게까지 인터넷 사용을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주요정보의 탈취나 금전적 이익을 노린 가상화폐해킹 등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한 해커와 인터넷 망을 활용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팬데믹에 대한 공동대처와 ABC(인공지능·바이오·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북녘에선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부여잡고 체제 생존을 부르짖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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