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 다리 건설로 최초 세계유산 삭제 불명예 기록
문화재청, 1심 패소 후 건설사 상대 항소… 유네스코, 김포 장릉 사례 주목

'왕릉뷰 아파트' 관련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문화재청이 지난달 말 건설사 3곳을 상대로 항소했다. /뉴시스
‘왕릉뷰 아파트’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문화재청이 최근 건설사 3곳을 상대로 항소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김포 장릉 인근에 위치한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 철거가 사실상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말부터 김포 장릉 근처 일부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된 데 이어 아직 최종심 판단이 나오지 않았지만 문화재청과 건설사들 간 법정소송에서 법원이 건설사들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1일 법조계 및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이 제기한 김포 장릉 주변 아파트 공사 중지 명령처분 취소 관련 행정소송 1심 판결에 대해 지난달 말 항소했다.

문화재청은 항소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범위를 500m로 볼지 200m로 봐야하는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또 문화재청 판단과 달리 1심은 ‘왕릉뷰 아파트’ 건설이 김포 장릉 보존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로부터 500m 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짓는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개별 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 조례는 200m 이내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례와 달리 경기도는 사실상 500m 이내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운영해왔다”며 “타 지자체도 500m 이내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운영 중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1심이 내린 판단에 대해 상급심이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항소를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작년 9월 문화재청은 대광이엔씨(시공사 대광건영)‧제이에스글로벌(금성백조)‧대방건설이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도시에 건설 중인 아파트 가운데 일부 단지가 김포 장릉의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며 이들 건설사 3곳을 상대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건설사 3곳이 지은 아파트 일부 단지 인근에 위치한 김포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왕릉이다. 김포장릉에는 조선시대 선조(14대 왕)의 다섯번째 아들이자 인조(16대 왕)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년)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년)가 매장돼 있다.

문화재청은 이들 건설사 3곳이 심의도 받지 않은 채 아파트를 지어 관련 법을 어겼다며 문제 삼았다.

문화재청으로부터 공사 중지 명령을 받은 건설사 3곳은 문화재청을 상대로 공사 중지 명령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다. 이와 함께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 중지 명령을 멈춰달라며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8일 법원은 공사 중지 명령 처분 취소 행정소송 1심에서 대광이엔씨·제이에스글로벌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대광이앤씨·제이에스글로벌과 재판부가 다른 대방건설의 경우 오는 8월 19일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대방건설과의 소송에서도 패소할 시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미 다른 두 곳의 건설사를 상대로 항소를 제기한 마당에 대방건설에 대해서도 항소를 제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항소한 건설사 두 곳에 대한 향후 재판 전략에 대해선 “아직 2심 재판부가 배당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도 “2심 일정이 잡히고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살펴본 뒤 재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문화재청의 입장은 최응천 문화재청장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7월 말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미 (왕릉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지만 (장릉 인근에) 쉽게 지은 건물에 분명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장릉 사태가 발생한다”며 “법원 판결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어려워도 항소를 통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별개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은 현재 대법원 판단만 남겨둔 상태다. 앞서 1심에서는 문화재청이 대광이엔씨·제이에스글로벌을 상대로 승소한 반면 대방건설로부터는 패소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건설사 3곳이 모두 문화재청을 상대로 승소했다.

◇ 유네스코, ‘왕릉뷰 아파트’ 모니터링… ‘삭제’ 전 단계인 ‘위험에 처한 유산’ 분류 가능성 있어 

학계는 이번 ‘왕릉뷰 아파트’ 사태로 인해 김포 장릉이 자칫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9년 6월 25일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열고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을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한 바 있다.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2006년 엘베강 양쪽을 연결하는 800m 길이의 다리 건설을 추진하면서 위험유산에 올랐다. 이후 4년 동안 보존에 관한 논의가 지속됐으나 다리 건설은 결국 강행됐고 위원회는 ‘드레스덴 엘베계곡’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퇴출시켰다.

이에 따라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세계유산 최초 삭제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김포 장릉 세계유산 퇴출 가능성에 대해 문화재청 세계유산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2019년부터 2020년, 2021년 세 차례 동안 김포 장릉 개발계획에 대한 우려가 유네스코에 전달됐다”며 “유네스코는 ‘제3자의 경로’를 통해 우려 사항을 전달 받았다고 하는데 아마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등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2009년부터 유네스코와 약속한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해 왔다”며 “다만 이번 김포 장릉 사례는 다른 사례와 달리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됐고 1심에서 문화재청이 패소하면서 상황이 유리하지만은 않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이후 김포 장릉 관련 사실을 접한 유네스코가 조선시대 왕릉의 관리‧감독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요구했고, 이에 문화재청은 올해 4월 ‘조선왕릉 보전 현황 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전달했다”며 “유네스코는 이 보고서를 검토한 뒤 세계유산위원회 전체회의에 김포 장릉 사례를 의제로 올릴지 결정한다”고 전했다.

세계유산정책과에 의하면 ‘조선왕릉 보전 현황 보고서’는 외교적 사안 등을 감안해 미공개 문서로 분류된 상태다.

세계유산정책과 관계자는 “김포 장릉 사례가 의제로 올라가면 유네스코는 현지에 실사단을 파견하는데 이 경우 정밀 실사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실사 결과 김포 장릉 보전에 중대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삭제’ 전 단계인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된다”고 전했다.

대법원 최종 패소시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최종 패소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또 최종 패소 시 유네스코로부터 김포 장릉과 관련해 어떤 권고사항이 나올지도 예측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끝으로 그는 “세계유산 1,200여개 중 50여건 만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된 만큼 김포 장릉도 최악의 경우 ‘삭제’가 아닌 ‘위험에 처한 유산’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문화재청은 김포 장릉을 포함한 문화재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연례 회의는 매년 6월 개최된다. 2022~2023년 의장국은 러시아로 당초 일정대로라면 지난 6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렸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연례 회의는 8월 말로 연기된 상태다. 8월 말 연례 회의 일정마저 늦춰진다면 회의는 10월에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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