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11일 오후 광주시의회 1층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심 사건의 대한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11일 오후 광주시의회 1층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심 사건에 대한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시민 단체들이 ‘굴종 외교’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오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과 15일 77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위안부 배상 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그리고 일본 원로 정치인의 ‘망언’ 등에 대한 정부의 미지근한 대응을 지적한 것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77번째 광복절을 맞아 윤석열 정부의 경제인 특별 사면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끝나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냉랭하기만 하다”며 “비록 정권이 바뀌었어도 결코 잊혀지거나 묻힐 수 없는 문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날 열린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외교부 민관협의회 3차 회의를 두고도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이 모두 불참한 반쪽 짜리 회의였다”며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8일에는 윤덕민 주일 대사가 ‘현금화 절차를 동결해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 전범 기업에게 대법원이 ‘특별현금화명령(강제매각)’ 결정을 고려하는 가운데, 한국 외교부와 주일 대사가 오히려 일본의 편을 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 “어느 나라 외교부‧대사인지 모르겠다”

지난 2018년 11월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일제강점기 강제 노동을 한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에게 각각 1억 원~1억5,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끝내 판결을 이행하지 않았고, 피해자 측은 2019년 3월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상표권과 특허권을 압류해 특별현금화명령 절차를 진행했다.

4년 여 간 시간을 이 사건의 공은 지난 4월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에서 특별현금화를 결정하면 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을 매각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령의 피해자 중 이미 3명이 숨졌다.

피해 할머니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국 외교부는 오히려 지난달 26일 대법원에 “특별현금화명령과 관련해 민관협의회가 일본과의 교섭 노력을 하는 상황”이라며 ‘판결을 미뤄달라’는 취지의 입장문을 전달한 것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지난 9일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기업 자산의 강제 현금화에 대해 “(현금화 절차가 이뤄져도 피해자들이) 충분히 배상을 받을 만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현 정부의 의지로 해석됐다.

윤 대사는 다음 날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일관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 간에 수십조 원, 수백조 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갈 가능성이 있다”며 같은 주장을 거듭했다.

일본은 실제로 지난 2019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후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의 경제적 보복을 한 바 있고, 지금도 일본 기업의 강제 현금화 절차가 시작되면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일본대사의 입에서 나올법한 소리를 한국대사가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윤 대사의 발언 직후 논평에서 “일본의 보복이 무서우니 법원 판결에 따른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마저 포기하자는 것”이라며 “일본은 한국 대법원판결을 4년 넘도록 무시하고 오히려 한국 산업에 위기를 조장하는데 이런 일본의 적반하장 태도를 꾸짖어도 부족할 판에 꼬리부터 내리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역사 정의도, 사법 주권도, 피해자들의 권리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 최일선에 선 사람의 발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외교부에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현금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윤 대사를 비호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더 큰 반발을 사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저지 대응단 출범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저지 대응단 출범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 “일본의 도발과 망언에도 정부는 침묵” 비판

야당에서는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빼앗긴 결과 일본이 망발을 이어가고 있다며 질타했다.

이재명 의원은 외교부를 겨냥해 “전범 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이 강제징용 배상을 계속 미루며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이 늦어지고 있는데, 외교부의 쓸데없는 행동이 기름을 부었다”며 “일본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이유로 책임 회피의 근거를 마련해줬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미쓰비시는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도 노력 중이니 배상을 보류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만들자는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역사적 책임과 합당한 법적 배상이 전제돼야 신뢰 구축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위성곤 정책수석부대표에 따르면 지난 6일, 일본 정부는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인 정신영 어르신에게 당시 가입한 후생 연금(노동자 연금 보험) 탈퇴 수당 99엔(한화 약 970원)을 입금했다. 위 부대표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때처럼 또다시 99엔 송금으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조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원로인 에토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대표단과의 회의에서 “일본은 과거 한국을 식민지로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은 한국에 어떤 의미에서는 형님과 같은 존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 발언에 대해 중국도 “일본 일부 정객들이 침략과 식민지배의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영예로 여긴다”며 “경악했다”고 비판의 메시지를 냈다.

위 부대표는 “최근 일본의 이러한 망발은, 국민의 자존심을 버린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가 한몫했다”며 “외교부 장관 방일 후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일본의 도발과 망언에도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버린 현실에 가슴을 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일본의 지속적인 도발에 차근차근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11일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민주당 원내대응단 출범식’을 가졌고, 단장을 맡은 위성곤 의원은 “국민의 바람과 달리 정부는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해야할 일에 야당이 나서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우려했다.

전용기 의원 또한 “우리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당장 일본에 특사라도 보내서 원전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한 역할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전 국민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만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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