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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그래도 살아있어서”… 무너진 구룡마을, 갈 곳 잃은 주민들
2022. 08. 12 by 연미선 기자 sunny20ms@sisaweek.com
지난 8일 쏟아진 폭우에 구룡마을 주민들은 인근 중학교에 마련된 구호소로 대피했다. 지난 11일 찾아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곳곳엔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사진=연미선 기자

시사위크|개포동=연미선 기자  “물을 퍼서 버리고 난 뒤에 돌아서면 또 퍼내야 하고. 밤을 꼬박 새웠죠. 세 방향에서 쏟아져 나오니까, 감당할 수가 없어…. 비가 또 들어찰까봐 집을 비울 수도 없었고.”

지난 11일 구룡마을 2지구에서 만난 80대 남성 A씨는 구룡중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로 떠나지 않은 채 집을 지켰다. 집을 비워놓으면 또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빗물에 집이 망가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가 퍼붓던 당일 밤, A씨와 그의 아들‧손녀는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를 하나씩 맡아 밤새 물을 퍼내야만 했다.

기자는 이날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현장을 찾았다. 구룡마을 현장에는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목은 그나마 정리가 돼있었지만, 한바탕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인가는 여전히 처참했다. 지붕을 덮었던 각종 판과 담요들은 벽과 함께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땅 밑에 묻혀 있었을 파이프들은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A씨는 지난 폭우 상황에 대해서 토로하다가 비가 들이쳤던 방을 보여줬다. 방 안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폭우에 젖어 냄새나는 바닥을 말리기 위해서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대야도 놓여있었다. 그는 “여기서 36년째 살고 있다. 젊어서 여기로 와서 이제 나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문제가 많다. 엉망진창인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은 구룡마을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의 집. 물이 들어찬 바닥과 장판을 말리기 위해 선풍기를 켜놓은 모습이다./ 연미선 기자

◇ 대피소로 간 마을 주민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

“구룡마을 정점에서 동네로 내려오는 길이 우리 집을 스쳐가요. 그래서 빗물이 위쪽에서부터 쓸려 내려오더라고요. 문도 못 열만큼. 나가고는 싶은데 물도 흙탕물에 전부 부서져 내려오니까 무서워서 못 나갔죠. 위쪽에 사람이 있길래 나가려 하니까 ‘오지마! 오지마!’ 소리치고, 나중에 비가 조금 약해지니까 구조대원 셋을 보내주더라고…”

구룡마을 주민 B씨(70대·여)는 이재민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는 구룡중학교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마쳤다. 오전에는 마을로 돌아가 난장판이 된 집을 치워야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폭우에 직격탄을 맞았다. 수도와 전기, 모두 끊겼다. 게다가 물이 빠지니 수해 흔적이 집안 곳곳에 남았다.

B씨는 폭우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물살이 너무 세서 휘청거리는데 구조대원이 뒤에서 붙들고 위쪽까지 밀어줬다. 그래서 살았다”며 “아무 정신도 없고 그저 살고만 싶었다. 그래도 살았으니까 다행”이라고 말했다.

구조된 이후 B씨는 이재민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살림이 다 망가져서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정부에서 체육관에 잘 곳도 마련해주고 식사와 간식도 줬다. 정신을 차리고나니 배가 고프더라. 사람이 안 먹고 살 수는 없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다만 B씨는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강남구에서는 급한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우선 대피시켰다는 얘기만 나오고 있다”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어쨌든 거기에 사는 사람이라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 안 물어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강남구청에서는 구룡중학교에 대피한 이재민들을 위해 식사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구룡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 연미선 기자

◇ 자연재해 취약 지역… 추가 대책 필요해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에는 판자집 등 가건물이 밀집돼 있다. 현재까지 서울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이다. 현재 강남구청이 폭우로 피해를 입은 구룡마을 주민 중 84가구 106명을 긴급구호소에서 수용하고 있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정부의 대책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위기다. 대피소도 임시방편일 뿐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터전인 구룡마을은 자연재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대한적십자사와 대한구호협회 물품을 지원받았고, 직원들이 (구룡중학교 이재민 대피소에서) 3교대로 근무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구룡마을 복구 진행 상황에 대해선 “토사물 등은 대체로 빼낸 상태이며 배수로를 청소 중이다. 무너진 제방은 날씨를 좀 더 지켜보고 복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강남구청 등이 계획 중인 대책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SH공사와 협업해서 이재민들 입주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지 않다. 희망하시는 분들은 입주를 돕고 있다”고만 답했다.

한편 기상청은 오는 주말에 이어 광복절까지 강한 비를 예상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는 주말동안 많은 곳 최대 120mm 이상의 비가 쏟아질 수 있다. 기상청은 최근 매우 많은 비로 인해 지반이 약해진 가운데 추가로 내리는 강한 비에 피해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에 현재 피해를 회복 중인 구룡마을도 추가 대비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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