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쌀값 폭락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하자 절차에 위반된 기자회견이라며 이를 막는 국회 방호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쌀값 폭락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하자 절차에 위반된 기자회견이라며 이를 막는 국회 방호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농민들과 국회에서 쌀값 폭락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야권은 대통령과 농식품부 장관이 농민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고, 국회 농해수위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의 방임을 성토했다.

농민들도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며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국농업경영연합회 등 전국 농민단체는 오는 29일 서울역에서 10만명이 참가하는 농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곡창지대인 전북 김제지역 농민들은 19일 오전 김제시 봉남면 용신리에서 쌀값 하락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수확을 앞둔 논 4,000㎡를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김제시 농업인단체연합회 소속 농업인들은 추수를 앞둔 논을 엎으며 “쌀 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지난해 벼 생산량이 평년보다 27만t 초과해 쌀값 하락이 시작됐는데도 정부가 양곡관리법에 명시된 자동시장격리를 발동하지 않아 이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쌀 시장 격리를 지속해서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차일피일 미루다 역공매 최저가 입찰방식의 시장 격리를 세 차례에 걸쳐 시행했다”며 “하지만, 그 시기와 방식 문제로 쌀값 하락을 막아내지 못했고 변동직불금 폐지를 조건으로 제정한 시장격리제도가 쌀값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만 확인했다”고 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세계 곳곳에서 식품 사재기가 일어났을 될 때, 우리나라는 식품 사재기가 거의 없는 나라로 화제가 됐다. 외신에서는 주식인 쌀 자급률이 평균 96%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꾸준한 국내 쌀 시장 유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인지하고 지난 11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하나로 마트를 방문했을 당시 쌀 포대를 들고 “쌀 가공식품들을 많이 좀 개발하고 판매가 돼야 쌀값이 안정된다”며 “국수도 만들고 빵도 좀 만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없다는 것이 농민들과 국회의 지적이다.

◇ 민주당∙정의당서 대책 요구 봇물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45년 만에 최대치로 하락한 쌀값을 우려했다. 김 의장에 따르면, 7월 25일자 80kg당 산지 쌀값은 17만5,700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21% 하락했다. 고물가 시대에 쌀값만 폭락한 셈이다.

김 의장은 “민주당은 지난 6월부터 정부의 쌀 수급 안정 대책을 촉구해왔다. 무엇보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황근 농림부 장관이 지난 1일 ‘쌀값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수요와 공급의 문제로 한정하는 한, 쌀값 폭락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 질타했다.

이어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쌀농사의 문제는 식량 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시장의 과잉공급 문제는 정부 차원의 수급 조절과 대체작물 전환 지원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이제라도 쌀 수급 안정을 위해서 2021년에 생산된 쌀을 최소한 10만 톤 이상 추가로 격리하고, 국제식량기구 권고 비축량을 국내산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정훈 원내선임부대표는 정부의 방임을 문제 삼으며 “수차례 정부에 쌀값 대책을 촉구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며 “이틀 전에는 12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서명한 쌀값 대책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지만, 농식품부의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그리고 어제 대통령의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최대 현안인 쌀값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농림부를 향해 “오히려 농축산물 무관세 확대 적용 및 저율관세율할당물량(TRQ) 증량에 힘을 쏟고 있다. 농림부 장관은 오로지 물가대책반장을 자처하고 있는 실정이다”며 “하지만 쌀값이 물가나 가계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다. 결국 쌀값이 떨어져도, 올라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이번 쌀값 폭락을 우려하며 전당대회를 맞아 강령에 ‘농림·축산·어민들의 소득보장’ 조문을 신설하기로 했고, 시장격리 조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과 식량안보 대책 강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당은 이동영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마늘 값 오르면 마늘 수입하고, 달걀 값 오르면 달걀 수입하는 정부 당국의 대책 없는 물가정책에 애꿎은 농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농가 지원방안 없이 ‘수입농산물 돌려 막기 물가 대책’은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대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물가 잡으랬더니 농민만 잡는 꼴”이라며 “당장 수확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정부당국은 쌀값 대책은커녕 물가 탓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더 이상 쌀값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단의 쌀값 대책, 농가 지원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양곡 판매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양곡 판매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 여∙야 없이 정부 쌀값 대책 혹평

여권도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 식량주권 쌀값 대책마련 정책토론회’를 주최했고, 이날 토론자들은 한결 같이 코앞으로 다가온 수확기의 쌀값 안정을 위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겠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주지 않으면 끝없이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용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올해 수확기를 대비해 남는 물량에 대해서 정부가 과감하게 신호를 줘야 한다”며 “그리고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 쌀값은 얼마이고,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의지가격은 얼마인지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또한 지난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쌀 가격 안정 및 재고미 해소를 위한 정부 대책 마련 촉구 결의안’을 추가 상정해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정부가 쌀 가격 조절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늦장 대응으로 쌀 가격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정부에 쌀 가격 안정 및 식량안보와 연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한 것이다.

결의안에는 정부가 쌀 가격의 신속한 안정과 쌀 수급의 정상화를 위하여 국내 쌀 초과 생산량을 조속히 추가로 시장격리하고, 쌀 가격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쌀 소비 촉진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 18일 쌀의 날을 맞아 500g 쌀 선착순 1,000개 나눔행사, 쌀 주제 전시관 운영, 경기미 특판전 등에 그쳐 지엽적인 대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 차원에서 몇만톤 규모의 시장격리가 필요한 시점에 국민의 소비만 바라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농협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7월 말 기준 농협의 쌀 재고는 41만 톤으로 전년 대비 73%나 늘어났다. 이 추세가 9월 신곡수매까지 이어지면 농협은 약 20만 톤 이상의 재고를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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