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관영 언론이나 대남 선동매체가 아닌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발언을 통해 한국 정부에 대한 비방과 위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위협은 지난 7월 27일 이른바 ’전승절‘ 69주년 행사 연설을 통해 나왔다. 북한은 6.25 전쟁을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면서,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참전 노병과 청년·학생 등이 참가한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노골적인 핵 위협까지 꺼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핵 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하는 숙명적인 불안감“을 운운하면서 유사시 핵을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에 경계심을 나타내면서 ”그런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은 한발 더 나갔다. 8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 연사로 나선 김여정 부부장은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을 남측 책임으로 돌렸다. 남한 내 탈북민 단체에서 보낸 대북전단과 마스크 등 방역물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입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물건에 바이러스가 묻어 전파되기는 어렵다는 방역전문가들의 소견은 무시됐다.

김여정 부부장은 ”비루스(바이러스)는 물론 남조선 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라며 강력한 보복을 주장했다. 남한을 동족이라 칭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까지 쏟아내며 ’불변의 주적‘이란 주장까지 펼쳤다.

문제는 이들 남매의 대남 비방이나 위협이 말로서 그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위협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고 6월에는 개성공단 내 남측 건물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백주에 폭파시켜버리는 도발적 행태를 보였다.

김정은 남매와 북한 당국의 대남 적대입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더욱 노골화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김여정 부부장은 ”검푸른 대양을 말리워 뽕밭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을 극치“라고 비난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고사를 인용해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관심은 9월 한반도 정세에 쏠린다. 8월 하순 이뤄진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북한은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선전·선동 매체를 총동원해 ’북침 전쟁연습‘이라는 식의 비난을 퍼부으며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이에 맞선 군사적 움직임을 본격화 하지는 않았다. 훈련 시작에 맞춰 순항 미사일 두 발을 쏘는 제스처를 보였을 뿐이다. 대체로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 중 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우리 군 관계자의 귀띔이다. 김정은 위원장 등 최고수뇌부가 공개활동을 자제하고, 한미 군사장비와 인력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움추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연습 종료 직후 북한은 도발적 행동에 나선 경우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의 경우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연습 등을 지켜본 뒤 9월 초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시점에 맞춰 ’수소탄 실험 성공‘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의 경우도 상황은 심상치 않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은 연초부터 국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북한의 핵 실험장인 함북 길주군 풍계리의 실험용 갱도에 이목이 쏠렸고, 모든 준비를 마친 채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만을 남겨놓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북한 매체들도 외신들의 7차 핵 실험 관련 보도를 인용해 전하면서 분위기를 탐색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제 막 입안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취임사와 7월의 통일부 대통령실 업무보고, 8.15 경축사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담대한 구상‘이란 청사진을 펼쳐보였지만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무엇보다 핵 포기를 전제로 체제보장과 대북지원을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북핵 포기‘라는 전제가 잘못됐다는 게 북한 주장의 핵심이다.

관건은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고와 협박대로 7차 핵실험에 나서거나 대남 도발행위를 펼친다면 한반도 정세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악화할 수 없을 정도의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접근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물론 김정은 체제의 북한으로서도 부담은 만만치 않다. 추가 핵실험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더욱 촘촘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경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시한 병원과 위락시설 건설이 차질을 빚을 정도로 만신창이 상태다. 일각에서 제재 무용론이 제기되지만 막상 대북제재의 당사자인 북한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7.27 전승절 연설에서 ”나라사정도 어려운데 얼마 전에는 코로나까지 겪은 판국“이라며 스스로 곤란한 상황임을 토로할 정도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한국 정부의 대북입장을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참모들은 간파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발적 행태에도 적당히 눈감아 주거나 감싸는 방식이 아니라 깐깐하게 따져 묻고 응징·보복까지 상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공산이 크다. 합동군사연습 재개에서 볼 수 있듯이 한미 동맹에 기초한 대북정책과 군사적 대응태세가 북한으로선 큰 부담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이런 모든 여건을 고려해 향후 대남·대미 정책노선을 결정할 것이 분명하다. 또 그 시점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끝난 9월 초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100일을 넘긴 시점에 이른바 ’대남 길들이기‘ 차원의 조치가 북한에 의해 감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11월 미국 중간 선거를 겨냥한 도발도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대북정책 수립과 한반도 정세 관리라는 시험대에 선 모양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대화와 교류를 탐색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도 안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듯한 북한 내부의 정세에 대한 철저한 진단과 치밀한 전략 없이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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