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구나 당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지만 교통약자인 장애인들에겐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권리다. 거리의 각종 높은 턱과 취약한 교통수단은 이들의 자유롭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기 일쑤다. 2005년 ‘교통약자 이통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후,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편집자주>

무인정보단말기가 우리 일상 속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가운데 많은 장애인은 키오스크 이용 과정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가 지난 7월 11일 서울 중구의 한 햄버거점에서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는 우리 일상 곳곳에 쓰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키오스크는 더욱 보편적 이용 기기로 활용되게 됐다. 문제는 기기 접근의 ‘보편성’이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장애인은 키오스크 이용 과정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 개정이 이뤄져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

◇ “음성 신호 없어, 키오스크 위치도 못 찾아”

“우선은 매장에 들어갔을 때, 키오스크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은행 내 키오스크는 안내 소리가 들려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 현재 대부분 키오스크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위치는 물론, 있는지조차도 파악이 안 된다. 어렵게 키오스크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음성 안내가 제공되지 않아 주문도 어렵다.” 

이창현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마주하고 있는 키오스크 이용 불편을 설명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국내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음성 안내와 점자 표시판 등을 갖추지 않고 있다”며 “매장 내 도와 줄 직원이나 사람이 없다면 키오스크의 위치 찾기, 메뉴 주문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 등 전자적 방식으로 정보를 화면에 표시해 제공하거나 서류발급, 정보 안내, 주문·결제 등을 처리하는 기기다. 행정기관, 은행, 병원 등 공공영역부터 대형 유통시설, 식당, 카페, 편의점, 관광시설, 영화관 등 다양한 민간·생활 영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최근엔 카페와 식당, 무인매장 중심으로 활용이 대폭 늘면서 일상 속을 더 파고들고 있다.

키오스크가 도처에 퍼지고 있는 가운데 많은 장애인들은 또 다른 일상 속 ‘거대한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키오스크들이 장애인들의 이용 편의가 고려되지 않은 채 운영·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점자 표시판, 점자유도블록 등이 없거나 휠체어 진입 공간이 확보되지 곳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많은 키오스크는 장애인들의 이용 편의가 고려되지 않은 채 운영·제작되고 있다. /뉴시스

터치스크린의 높은 위치 때문에 주문이 어려운 문제도 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키오스크가 있는 매장을 찾았다가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인 박김 대표는 “키오스크 터치스크린 화면이 높은 위치에 있다 보니 손이 닿지 않았다”며 “어떻게 해도 안 되기에, 결국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 했다”고 전했다. 박김 대표는 이러한 경험들이 장애인들의 심리적 장벽과 소외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짚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7월 발표한 ‘장애인 무인정보단말기 접근 이용 모니터링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되는 키오스크는 매우 미미했다. 

해당 모니터링 조사는 인권위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진행됐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국 26개 업종에서 사용 중인 키오스크 1,002대를 대상으로 장애인 접근성 조사를 벌인 결과, 모든 장애인들이 접근이 모두 가능한 기기는 인천 세종병원에 설치되어 있는 기기 단 1대뿐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 “키오스크 1,002대 중, 장애인 접근성 보장 기기 1대 뿐”

키오스크 접근 환경을 모니터링한 결과,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점자유도블록 등의 장치를 갖춘 곳은 8.5%에 불과했다. 전체 키오스크 중 91.5%가 점자유도블록 및 음성신호를 갖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키오스크의 위치를 안내해주는 안내판이나 안내문구 등이 없는 곳도 81.1%에 달했다. 키오스크 아래쪽에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는 곳은 52.8%로 나타났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서 기계가 내려오거나 화면이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키오스크는 3.1%에 그쳤다. 조작이 필요한 부분들은 투입구와 발행구 등 기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70% 이상이 손이 닿기 어려운 높이에 있었다. 특히 손이 전혀 닿지 않는 기기도 127개나 됐다. 

터치방식과 누르는 버튼이 모두 가능한 키오스크는 10.7%에 불과했다. 87.7%의 키오스크가 터치 방식으로만 작동했다. 아울러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화면에 수어가 제공되고 있는 기기는 1대에 불과했다. 

전체 기기 중 62%는 사용법 안내가 전혀 없었다. 안내가 제공되고 있는 18.4%의 경우도 글자로만 안내를 하고 있어 노약자나 발달장애인 등 문자 해독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불편이 예상됐다. 이 외에 기기가 작동이 안 될 경우 연락방법 자체가 아예 없는 기기는 66%나 됐다.

키오스크 접근성은 비단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키오스크가 일상 도처에 확산되면서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도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키오스크 보편적인 접근성 강화에 대한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해 키오스크 접근 편의성 제공 의무를 법제화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해 국회에선 키오스크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단계적인 시행을 예고하면서 장애인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사진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가 지난 7월 11일 서울 중구의 한 햄버거점에서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이에 지난해 국회에선 키오스크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진전이 있었다. 해당 법안은 내년 1월 28일부터 시행된다. 

◇ 내년 ‘키오스크 접근성 보장’ 법률 시행… 단계적 시행·실효성 놓고 진통

법 시행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장애인단체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시행령이 구체적이지 않는데다 하위 지침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된 키오스크 도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키오스크 접근성 강화방안을 마련하는 연구용역 결과와 시행령 초안을 공개했다. 법 시행 후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24년 1월 28일부터 2026년 1월 28일까지 총 3단계에 거쳐 도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1단계는 공공기관, 의료,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어 2단계(2024년 7월 28일부터)는 문화·예술 사업자, 복지시설 등 관련 기관, 기타 사업장 중에서 상시 1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3단계는 (2025년 1월 28일부터)는 관광 활동 관련 사업자, 체육활동에 필요한 시설, 기타 사업장 중 상시 1명 이상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했다.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는 비단 장애인들의 문제는 아니다.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도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br>
키오스크 접근성은 비단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도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소상공인 등 민간 영역의 기기 교체 부담을 고려해 이 같은 단계적 도입 방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이를 놓고 장애인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용 불편이 해소되려면 수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긴 유예기간을 줌으로써 민간 생활 영역의 베리어프리(barrier free) 키오스크 도입 속도가 더딜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규모 사업주의 비용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애인차별연대는 무인정보단말기 접근 이용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를 통해 “소규모 사업주의 경우 제대로 된 기기의 설치는 비용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적으로 장애인의 접근이 가능한 기기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으로 국가가 일정 정도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주 의무를 강화하는 법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장애인차별연대는 “사업주의 무인정보 단말기의 보급이 확대되고, 무인점포가 늘어가는 현재 상황에 사업주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강력한 법 규정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사업주 스스로 장애인이 기기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키오스크 기기의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도 나왔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물리적인 표준 규격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기기의 물리적 높이 및 터치스크린 높이 기준 등과 관련한 일정한 규격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호출 버튼을 터치스크린이 아닌, 물리적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접근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화면 인터페이스 구성에 대한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키오스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 고도화될 것”이라며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들도 키오스크를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보편적인 접근성을 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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