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정사상 처음으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이 지난 9월 5일 오후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와 수원구치소로 이송되며 고함치고 있다.
제보자인가 프락치(첩자)인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모(46)씨를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대립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씨는 내란음모사건의 주요 증거로 꼽히는 녹취록을 국가정보원에 전달한 당사자. 그의 녹취 행위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이 의원의 유무죄를 가릴 척도가 된다. 이씨를 바라보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시선이 서로 다른 이유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씨를 공익 목적의 제보자라고 설명한데 반해 변호인단은 '단순한 제보자가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경기도 수원지역에서 활동해온 통합진보당의 당원으로, 현재 검찰이 실체 규명 중인 'RO(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 모임의 한 사람이다. 그가 내부 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RO가 맹목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것에 대해 실망했다는 것. 사건 발생 두 달 만인 2010년 5월, 이씨는 국정원 콜센터 홈페이지에 '20년간 운동권으로 살아왔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며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다.

이후 이씨는 2011년 1월25일부터 2012년 5월18일까지 열렸던 RO모임을 녹음한 뒤 파일 11개를 국정원에 전달했다. 국정원이 법원으로부터 감청 영장(통신제한조치허가서)을 받자 2012년 6월21일부터 2013년 7월29일까지 RO모임 관련 녹음 파일 33개를 추가 전달했다. 국정원 수사관 이씨는 14일에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해 "반신반의하던 상태였던 만큼 먼저 녹음을 부탁할 상황이 아니었다. 제안은 이씨가 했다"고 증거 수집의 위법성을 부인한 뒤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5월12일 RO모임은 원본으로 존재한다"고 진술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국정원의 녹취록 입수 경위의 불법성을 문제 삼았다. 이씨가 국정원으로부터 녹음장비 일체와 유의사항을 전달받았으며 그 대가로 활동비로 받았다는 것. 결국 이씨가 국정원에 전달한 녹취록은 적법하게 수집한 증거가 아닌 만큼 법적 증거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게 변호인 측의 설명이다. 특히 RO가 북한과 연계됐고, 그 총책이 이 의원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이씨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당 일각에선 이씨의 도박설도 제기되고 있다. 하루에 500만원 넘게 쓸 정도로 도박에 빠져 살았다는 것. 이씨가 국정원에 포섭된 것은 결국 돈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게 당내 의견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이씨가 도박빚이 상당히 많았고,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1000만원 이상 도박빚으로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매수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씨는 오는 21일과 22일, 25일 법원에 출석한다. 검찰 쪽 증인 신문은 21일에 이뤄지고, 변호인 쪽 반대 신문은 22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씨의 증인 신문 이후 녹취록의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씨의 '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한편, 이씨는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해 3월부터 수원시 친환경학교급식지원센터장을 맡아왔으나 국정원이 이 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자 지난 8월29일 전화로 사표를 제출한 뒤 종적을 감췄다. 본인이 운영해 온 당구장과 수원시 권선구의 아파트도 정리됐다. 이웃 주민들에게는 자녀 교육 문제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9월 26일 오후 경기 수원지검에서 김수남 검사장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 내란음모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수원지검 공안부는 이날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 의원을 구속기소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는 지난 8월28일 검찰의 의원실 압수수색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른바 'RO', 혁명조직이라는 지하단체를 만들어 내란 음모를 주도해왔다는 것. 지난 5월12일 서울 합정동의 한 종교교육시설에서 RO 회원 1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북한이 남침할 경우에 대비해 국가기간 시설을 파괴하는 방안을 모의했다는 게 검찰 측의 주장이다. 다음날 검찰은 녹취록을 증거로 소환조사 없이 이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이 의원은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동료 의원들에게도 외면당했다. 9월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이 의원은 '현행범을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국회법상 불체포특권을 적용받을 수 없게 됐다.

이후 검찰의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다음날 수원지법으로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은 수원구치소로 수감돼 국가정보원을 오가며 집중 조사를 받았다. 이후 13일부턴 검찰에 송치돼 조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의원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결국 검찰은 이 의원의 진술을 얻지 못한 채 10월26일 재판에 넘겼다.

이후 4번의 공판준비기일을 가진 뒤 11월12일 첫 공판이 열렸다. 그간 침묵을 지켜오던 이 의원은 피고인 진술에서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토론한 모임이 비밀조직으로 둔갑했다"면서 "북의 공작원을 만난 적도, 지령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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