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대한항공(회장 조양호)이 계열사인 한진해운에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뒤 ‘주가하락’과 ‘신용등급 강등’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본인의 곳간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실 계열사 지원에 나섰다가 ‘동반 부실’의 위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계열사 지원하다 '동반부실'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자금난에 처한 한진해운에 긴급자금 1,5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한진해운홀딩스가 가진 한진해운 지분 36.56% 가운데 절반가량인 15.36%를 담보로 잡고 자금을 대여해주기로 한 것. 

문제는 ‘구원투수’로 나선 대한항공도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지속한데다, 재무구조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대한항공의 올 상반기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887.01%, 순차입금 의존도는 57.19%에 달한다. 영업실적도 좋지 않다. 지난 2분기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보다 43.2% 감소한 1,601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말만 해도 1조2,500억원에 이르던 현금성 자산도 지난 6월 기준 8,76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대한항공은 오는 2018년까지 신형항공기를 구입하기 위해 3조9,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계열사 지원에 나섰으니 시장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한항공 주가는 지난달 30일 3만8,400원에서 보름 사이 23%나 폭락했고, 덩달아 시가총액은 5,134억원 감소했다. 

지난 14일엔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추가로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어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신용평가사들의 분석이었다. 

 △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그렇다면 대한항공은 왜 이런 우려 속에서도 계열사 지원에 선뜻 나선 걸까. 그간 증권업계에선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도와줄지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한진그룹은 창업주 故 조중훈 회장의 장남 조양호 회장이 이끌고, 한진해운은 셋째 故 조수호 회장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맡아 경영하고 있다. 최 회장이 2011년부터 계열 분리를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마냥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 계열분리 막기 위한 조치?

사정이 이런데,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 지원에 선뜻 나서자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업계에선 조 회장이 한진해운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이번 자금 지원에 나섰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한 계열 분리를 막고자 하는 속내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계에선 대한항공 측이 자금 지원을 하면서 한진해운 지분을 담보로 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최은영 회장 측은 한진해운홀딩스를 통해 한진해운을 지배하고 있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고, 딸인 조유경, 유홍 씨의 지분과 한진해운 계열 양현재단(9.9%) 지분에 우호세력을 합치면 약 47%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한진해운은 한진해운홀딩스가 지분 36.56%를 보유해 1대주주에 올라 있다.

물론 한진그룹도 대한항공 등을 통해 한진해운홀딩스의 지분 27%를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지원으로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의 지분 15.4%를 담보로 잡게 됐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한진해운 경영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에 재무통 10명을 파견해 강도 높은 실사를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의 재무상황을 들어다보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최 회장의 독립경영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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