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세.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주요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친일과 유신독재 찬양 등으로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는 소식은 자네도 들었겠지. 채택률이 0%라고 하더군. 그러자 정부 여당이 나서서 교육과정 체계와 교과서 편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하는군. 교육부 장관은 1996년에 해체한 편수국 직제를 다시 부활시켜 편수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네. 새누리당에서는 일선 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 철회가 이어지자 “교과서 1%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미래 세대를 위해 국정교과서로 다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고 흥분하고 있구먼. 정부 여당의 저런 모습을 보면, 작년에 ‘도행역시’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교수들의 선택이 탁월했던 것 같네.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시키는 일들이 올해도 계속될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면 최근의 역사 교과서 논쟁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반응을 먼저 보세. 지난 12일에 <한국일보>가 역사교육학회ㆍ한국고대사학회ㆍ한국근현대사학회ㆍ한국역사연구회ㆍ한국현대사학회의 5개 학회 임원을 맡고 있는 학자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33명 중 단 1명을 제외한 32명(97%)이 국정 체제 전환에 반대했네. 교육부 내에 편수 전담조직을 부활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5명(15%)만 "교과서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응답했네.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7종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보수 진영의 주장 역시 전문가들의 시각과는 달랐네. 좌편향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응답이 29명(88%)이었고, 좌편향이라는 응답한 사람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2명뿐이었다네.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주류 학자들은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7종 교과서가 우리들의 일반 상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는구먼. 오히려 교학사 교과서가 학계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역사 왜곡과 오류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네. 국정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정권에 따라 교과서가 좌지우지되고, 역사 교육의 핵심인 다양한 해석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네. 군사독재정권에서나 가능했던 국정 체제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맞지 않는 부끄러운 과거회귀라는 거지.

그러면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 10일 전국 성인남녀 1,068명을 대상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하자는 정부 여당의 주장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54.0%가 찬성하고 30.0%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더군. 찬성 의견은 경남권(60.2%)과 충청권(57.4%), 50대(62.2%)와 60대 이상(58.9%), 자영업(61.2%)에서, ‘반대’는 서울권(35.0%)과 전라권(32.1%), 20대(41.4%)와 30대(39.3%), 학생(49.6%)과 사무/관리직(43.9%)에서 높더군. 정당지지도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자의 73.4%가 찬성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반대가 54.3%로 찬성 34.0%보다 많았네.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데 일반 국민과 전공 학자들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뭘까?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하자는 정부 여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국민들은 ‘국정교과서’와 현재의 ‘검인정교과서’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국정 체제로의 전환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은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사용했던 교과서가 ‘국정’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검인정’이라고 생각할까? <모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마음이 심란해 우리나라 교과서 발행 체계의 변천 과정을 검색해봤네. 친구야, 여기서 내가 질문 하나 하지. 우린 어떤 책으로 국사를 공부했을까? 정부 여당 사람들 생각대로라면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갖고 있어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60대 이상은 국정 교과서로 공부한 세대여야 하는데, 정말 그럴까? 30대와 40대는 ‘좌편향적’인 검인정교과서로 공부해서 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종북’이 많을까?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국가가 직접 편찬하고 저작권을 갖는 국정교과서, 민간에서 개발해 출판하지만 국가의 검정 심사에 합격해야 하는 검정교과서, 민간에서 개발해 출판하지만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고 시·도 교육감이 승인한 인정교과서가 사용되고 있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1973년까지 검정교과서였지만(중학교 11종, 고등학교 11종), 10월 유신 이후 1974년부터 국정교과서로 전환했네. 이후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2002년에 국사에서 ‘근현대사’가 분리되어 검정으로 바뀌었고, 2010년에 아직 국정이었던 ‘국사’와 검정인 ‘근현대사’가 합쳐져 ‘한국사’가 되면서 검정교과서가 되었네. 그러니 만약 다시 국정으로 돌아간다면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는가?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12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보면, 30대와 40대는 각각 32%와 41%로 평균 52%보다 낮은 반면, 60대 이상은 80%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더군.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이 정권의 버팀목이라는 소리지. 그런데 그들이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공부했던가? 60살 이상인 노인들은 검정교과서로 국사를 배운 세대인데도 왜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고, 국정교과서로 공부한 30대와 40대에서는 비판자들이 더 많을까?

며칠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과 일본의 두 정상이 자신들의 정치적 관점을 교과서에 반영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을 했다는군. 창피할 뿐이네.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은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간섭하는 검인정을 넘어 자유발행제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북한,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우리보다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은 나라들만 채택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딱하지 않는가? 외국 신문의 충고에 펄펄 뛰면서 격한 반응만 보일 게 아니라 성찰의 기회로 삼으면 좋으련만….

자네 혹시 ‘진미개오’란 선불교 용어를 아는가? <교수신문>이 ‘2014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채택한 말인데,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네. 무슨 일이든 아집과 집착이 생기면 점점 더 어리석은 생각과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민망한 무리수를 자꾸 두게 되네. 자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는 설날 전후가 되겠군. 청마의 해 갑오년에는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망에서 깨어나 대오각성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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