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구자원 ‘집행유예’ 판결, 2월말 선고 앞둔 최태원 회장 훈풍 ‘기대감’
법조계 일각선 “동종누범… 실형 불가피” 부정적 여론도 솔솔

▲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3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이어 구자원 LIG 그룹 회장까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재벌 총수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달 말, 대법원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파기환송심 결과에 잔뜩 기대를 거는 눈치다. 과연 최 회장도 서초동에 드리우고 있는 햇볕을 쬘 수 있을까.

앞선 재판에서 법정 구속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11일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김 회장에 대해 이 같이 선고한 이유로 ‘경영상의 불가피성’ ‘경제발전 공로’ ‘피해 회복’ ‘건강 상태’ 등을 들었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도 이날 피해자들과의 합의, 78세의 나이 및 수술 전력 등을 이유로 김 회장과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재계에서는 재판부의 이 같은 변화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법원은 지난 2012년 8월 김승연 회장을 법정 구속한 것을 계기로 대기업 오너 비리에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 왔다. 총수들의 법정구속이 속출했는가 하면, ‘총수 부재로 인한 기업경영의 어려움’ ‘건강악화’ 등의 하소연도 법원은 양형(量刑)에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김 회장과 구 회장이 동시에 석방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법원 기류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경제민주화’ 강풍 탓에 재계 총수들에게 잇따라 실형이 선고됐지만, 올해부터는 정부가 정책기조를 ‘경제활성화’로 선회하면서 재벌가 오너들에 대한 판결이 비교적 관대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 되살아난 재벌가 ‘3·5’ 공식

관심은 이 같은 ‘훈풍’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도 불어줄 지 여부다.
 
현재 최 회장은 이달 말 예정된 대법원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최 회장은 SK텔레콤과 SK C&C 등 계열사 자금을 동원, 창업투자회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46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지난해 1월31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의 실형이 유지됐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징역 또는 금고형이 3년 이하일 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이번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처럼 ‘파기환송’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을 해야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고법 재판부가 사건을 면밀하게 검토해 형량 조절을 고려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김 회장의 사례처럼 ‘집행유예’를 기대해 볼 만 하다.

하지만 대법원이 2심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실형에서 벗어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일단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이 최 회장의 재판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엄벌 기조가 바뀐 만큼 최 회장 역시 수혜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경우, 사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 회장은 과거에도 ‘분식회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는 점에서 실형이 불가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경제개혁연대 측은 지난 2012년 11월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최 회장에게 4년형을 구형한 데 대해 “엄격한 양형 기준을 적용하라”며 “최태원 회장에게 적용 가능한 감경사유는 특별히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오히려 가중요소로 볼 만한 사유가 눈에 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2009년 7월부터 시행된 횡령ㆍ배임범죄의 양형 기준을 제시하며, 최 회장의 범죄행위가 가중요소에 해당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31일 오후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최 회장이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최악의 결과 우려 목소리 솔솔…

2009년 7월부터 시행된 횡령ㆍ배임범죄의 양형 기준을 보면, 감경요소로는 △사실상 압력에 의한 소극적 범행가담 △오로지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함 △임무위반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 등이 있다.

가중요소에는 △대량 피해자(근로자, 주주, 채권자 등 포함) 발생 △동종 누범 △횡령 범행 △범행 후 증거은폐 또는 은폐 시도 등이 포함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를 토대로 2012년 12월 발표한 성명 자료를 통해 “최태원 회장은 계열사 자금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횡령한 정황이 드러나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면서 “이는 횡령ㆍ배임범죄의 양형 기준 중 가중요소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태원 회장은 과거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으로 특경가법상 배임죄 등 유죄판결을 받은 이력이 있어 ‘동종 누범’의 가중사유가 적용될 수 있다. 최 회장이 300억원 이상 횡령한 혐의가 인정될 경우, 그 형량은 7년에서 11년 사이에서 정해져야 함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2심 재판부가 최 회장에 관해 지적한 부분은 주목할 만 하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허황되고 탐욕스러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SK그룹 계열사 자금을 동원했다”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최 회장 형제의 잘못을 준엄하게 지적했다.

특히 “대규모 기업집단 최고 경영자가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무시한 채 지위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할 경우 경제질서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면서 “배임 혐의 등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2008년 사면·복권된 적이 있는데 또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앞서 재판부가 김 회장과 구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재벌 봐주기’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등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것도 불안한 대목이다. 이는 재판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최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현재 SK그룹은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속내는 파기환송심→집행유예라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지만, 외부엔 그 어떤 속내도 드러내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경제활성화’ 기조로 인해 ‘봄날’이 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차디찬 감옥에서 무려 1년 넘게 보낸 최태원 SK그룹 회장 입장에서는 여전히 살을 베이는 듯 한 추운 겨울이다.

과연 최 회장에게도 봄날은 올 것인가. 재계에 불고 있는 훈풍이 최 회장에게도 불어 줄 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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