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사회적으로 공인된 노인은 아니지만, 60살이 되니 노인들이 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노인들의 삶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네. 오늘은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보세.
   
유엔(UN)이 정한 ‘세계 노인의 날’인 작년 10월 1일에 유엔인구기금(UNFPA)과 국제 노인인권단체 ‘헬프 에이지 인터내셔널(Help Age International)’이 세계 91개국의 노인 복지 수준을 수치화해 발표한 ‘글로벌 에이지 워치(Age Watch) 지수 2013’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39.9로 67위였네. 낙제수준이지. 이 지수는 각국의 노인 복지 수준을 소득, 건강, 고용과 교육, 사회적 자립과 자유 등 네 가지 분야로 나눠 평가해서 산출했다네. 한국은 기대수명 등 건강 분야 지수에서는 74.5점으로 8위였지만, 퇴직연금제도와 노인빈곤율, 노인 1인당 GDP 등을 반영한 소득 분야 지수는 8.7점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인 90위를 기록했네. 한국의 고용과 교육 분야 지수는 19위(56.3), 사회적 자립과 자유 분야는 35위(68.3)였다. 이제 경제적으로 꽤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노인 복지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최하위권에 속한다니 놀랍지 않는가?

우리 정부는 이 보고서의 지수 산출 과정에서 사용한 자료의 타당성, 신뢰성, 정합성 등이 의문시된다고 반박했지만, OECD 등 국제기구들이 발표하는 통계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에 비해 노인들의 삶이 매우 열악하다는 걸 알 수 있네. OECD 국가들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단연 1등이네. 2011년 기준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 12.4%의 4배 수준이네. 2010년 한국 노인들의 10만 명 당 자살률은 80.3명으로 OECD 평균 20.9명보다 약 4배 정도 높더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만 2000년대에 들어 자살률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네. 2000년의 자살률이 34.2명이었으니 두 배 이상 증가한 게지. 같은 기간 동안 OECD 평균은 22.5명에서 20.9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는데, 왜 우리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을까?  노인들의 삶이 이렇게 열악한 데도 노인복지지출은 OECD 꼴찌 수준이라네.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인복지지출 비중은 2.1%로 OECD 평균 7.3%보다 훨씬 낮다. 이웃나라 일본의 10.4%의 5분의 1 수준이네.
 
가난한 노인들이 많은데도 복지수준이 미약하니 노인들의 근로 소득 의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겠지. OECD의 ‘2011년 소득 불평등 통계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근로 소득 의존율은 58.4%로 OECD 평균 21.4%의 2.7배나 되더군. 한국에서는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뜻이네. 실제로 우리나라 노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지. 2011년 65세 이상 노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0.1%로 OECD 평균 12.3%보다 2.4배 정도 높더군. 연금제도가 잘 갖추어진 유럽 국가들의 평균은 4.6%였네. 우리나라의 경우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노인이나, 동네나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지나 파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을 하는 노인들을 포함하면, 일 하는 노인들의 비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네. 일하는 노인들이 많은 게 좋은 게 아니냐고?  난 노인들의 고용률이 높은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세나.

일 하는 노인들이 많으면서도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다는 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세계 유수 언론들의 눈에도 그런 한국 상황이 흥미롭게 보였나 보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월 21일에 사교육과 사치품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는 부자 나라 한국에서 노인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다고 보도했더군. 언덕 위에 물이 새는 낡은 집에서 살고 있는 노인, 줄을 서서 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 하루 몇 천원을 벌기 위해 폐지를 모으고 있는 노인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고 있더군.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난 2월 3일 최빈국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노인 세대가 정당한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보도했네. FT는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소득이 3만1950달러로 스페인이나 뉴질랜드보다 높은 한국이, 경제규모 대비 복지 수준이 미약하여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 최악이고, 노인 자살률은 단연 세계 최고라고 비꼬고 있더군. 외국 언론들의 지적이 지어낸 거짓이 아니니 인정할 수밖에. 그런 신문 보도 자체를 창피하게 생각해야 할 정부가 성찰 대신 반박이라니, 한심하더군.

우리 노인들의 삶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인데도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노년기의 경제적 생활을 본인이 책임져야 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네. 작년 3-4월에 미국의 사회조사기관인 ‘퓨 리서치센터’가 세계 21개국 2만2천여 명을 대상으로 ‘누가 노년의 삶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물었는데,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본인 스스로’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절반을 넘어 53%를 기록했다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정부, 가족, 개인 순으로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인(53%), 정부(33%), 가족(10%) 순이었네. 고령화를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79%로 일본(87%) 다음으로 높았지만, ‘노년기에 충분한 생활수준을 누릴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43%가 ‘그렇다’고 응답했더군. 무엇을 믿고 그런 호기를 부리는지…. 한숨만 나오네.

사실 우리들만큼 일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만 하고 사는 성실하고 근면한 국민이 어디 있는가? 2011년 현재 한국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2,090 시간으로 OECD 평균 1,765 시간보다 무려 325시간이 더 많네. 약 40일 이상을 더 일하고 있는 거지. 이것도 지난 10년 사이에 500시간 정도 줄어든 수치이다. 그러니 지금 60세 이상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했겠는가? 그래도 나이 들어 가난하다면 노인 개개인보다는 우리 사회 자체가 문제인 거지. 이제 노인들도 자신들이 고통 받고 있는 빈곤이 ‘개인’의 잘못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고,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알아야 하네. 그리고 그런 사회문제는 한 개인이나 한 가족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게 아니고, 사회와 국가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도 깨달아야 하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가와 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삶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지. 그게 사회권, 즉 사회적 시민권이라네. 하지만 그런 각성이 어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인가?

앞에서 이야기한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자가 인터뷰한 강남구 구룡마을에 사는 81세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시게. 12만4,000원의 기초수급과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지체장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씀 하시네. 자네도 그 기사를 직접 읽어보게나. 우리 대통령은 참 복도 많은 분이시네. 이렇게 충성스러운 노인들이 있으니 행복할 수밖에.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재원 부족이라는 핑계로 파기했는데도 그 공약의 수혜계층인 60세 이상의 노년층의 최근 국정지지도가 80~85%에 이르고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