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되면서 SK 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SK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의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아침은 의외로 한산했다. SK에겐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이었다.

법정 출입문이 개방된 오전 9시 이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최태원·최재원 형제의 재판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방청석 자리 잡기 전쟁’ 같은 혼잡함은 없었다.

10시부터 시작된 판결 선고는 민사, 특별, 형사 순으로 진행됐다. 최태원·최재원 형제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익숙한 이름도 들려왔다. 이날 대법원 2호 법정에서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 연구논문을 조작해 거액의 연구비를 빼돌린 혐의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을 확정 받았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교육부를 상대로 한 직무이행명령 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태원·최재원 형제의 이름이 호명된 것은 10시 30분쯤이다. 일순간 재판장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판사 역시 잠시 뜸을 들인 뒤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피고 최태원과 최재원, 김준홍 그리고 원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최태원·최재원 형제와 SK의 운명이 결국 최악의 결과를 맞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판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취재진들은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 “억울하다” 호소하던 최태원 회장, 마지막 희망도 물거품

최태원·최재원 형제에게 암담한 앞날을 선사한 이번 사건은 지난 2011년부터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SK텔레콤 상무 출신인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의 주가조작 혐의가 포착됐고, 조사과정에서 최태원·최재원 형제가 회삿돈을 빼돌려 투자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 법정다툼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최태원·최재원 형제는 혐의를 일체 부인하며 ‘오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술은 잇따라 번복됐다. 특히 최재원 부회장은 자신이 범행을 주도했다고 자백했다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거짓자백이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실형을 면해보려 했던 두 형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최태원 회장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최재원 부회장은 1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 6개월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각각 지난해 1월 31일과 9월 27일부터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대법원 최종 선고를 앞두고 유일한 희망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모두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앞서 지난 2008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던 최태원 회장에게 이는 희망고문에 불과했다.

 ▲고개숙인 최태원(왼쪽)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 최태원·최재원은 교도소로… SK는 어디로?

이미 고초를 겪을 대로 겪은 최태원·최재원 형제와 SK그룹이지만 이들의 앞날은 더욱 암담해졌다.

일단 두 형제의 처지는 조금 더 고달파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형이 확정되지 않아 구치소에 머물렀지만, 이제 형이 확정돼 교도소로 집을 옮겨야한다.

SK그룹은 총수일가 공백의 장기화가 현실이 됐다.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최태원 회장은 앞으로 형기가 3년 가까이 남아있다. 최재원 부회장 역시 2년 8개월 정도가 남아있다. 가석방을 감안하더라도 2015년 말까진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당장 두 형제의 부재는 SK그룹의 신규사업과 해외사업, 각종 투자계획에 차질을 줄 수밖에 없다. SK그룹은 선고 직후 “참담하고 비통하다”고 밝혔는데, 이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게다가 실질적인 경영 공백은 더욱 길 것으로 보인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50억 이상의 횡령 범죄를 저지를 경우 5년 동안 기업의 이사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장 SK는 물론 계열사 이사직에서 물러날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최태원 회장은 SK,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SK C&C 등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도 SK네트웍스와 SK E&S의 등기이사다. 이들 계열사의 주주총회는 3월말로 예정돼 있다.

선장을 잃은 SK는 우선 ‘수펙스 최고협의회’를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 추구협의회는 다른 그룹의 사장단 회의와 비슷한 것으로 17개 계열사 대표들이 모여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다.

하지만 그룹총수에 비해 수펙스 최고협의회는 과감한 결단보단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서서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사상 최대 위기를 맞은 SK는 더 긴 겨울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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