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며 대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정부 기관을 비롯한 재계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각 공공기관들은 잇따라 대북사업을 내놓는가 하면, 포스코와 현대상선 등 일부 기업들도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대북사업과 관련해 논의 중인 기업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각계에서는 이제야 봄바람을 타기 시작한 남북간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작 ‘삼성’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북사업의 상징적인 면이나 실질적인 경제효과를 따져볼 때 ‘대한민국 1위 기업’인 삼성, 즉 이건희 회장이 직접 선봉에 나서야 이제 막 시동을 건 대북관계에 강력한 추진력을 더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 좌)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우측/사진출처=노동신문).

사실 그동안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이 주도적으로 전담해왔다. 1989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른바 ‘소떼 방북’을 계기로 현대그룹은 북한 측과 남북경협7대사업권 및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 독점권을 가지며 관련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 및 재계 등 각계에서는 이제라도 ‘현대’가 아닌, ‘삼성’이 나서서 대북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남북 간 화해무드가 무르익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민국 1위 기업’이자 ‘글로벌 리더 기업’인 삼성이 대북사업에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향후 통일로 가는 길에 상당한 추진 동력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 이건희 회장, 대북사업 모른 척 하는 이유

삼성도 한때 대북사업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다. 삼성은 지난 2000년부터 남북경협 차원에서 ‘북한 대동강TV’와 함께 연간 2만∼3만대 규모의 브라운관TV를 평양에서 생산해 국내에서 판매한 바 있다. 하지만 2010년 5월, ‘5·24조치(천안함 피격사건에 따른 대북지원 전면 중단 조치)’로 남북경협에 제한을 받자 브라운관TV 등 전자제품 임가공 생산을 중단했다. 현재는 모든 대북사업에서 철수한 상태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에서 ‘북한 동향 및 남북 관계 전망’, ‘북한 체제의 이해’ 등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는가 하면, 의료기기·바이오 등 그룹 차원으로 진행하고 있는 신수종 사업을 대북사업 진출 카드로 선택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 호사가들의 시나리오에 그치고 말았다.

삼성은 대북사업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룹 입장에선 정부 정책과 관련해 어떤 언급도 할 수 없다”는 게 삼성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설령 대북사업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논의중이거나 구체적인 전략이 도출된 게 있다하더라도 외부에 공식적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예민하고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대북사업을 꺼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경제논리’로 해석한다. 단적으로 말해 ‘돈이 안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북한 관련 사업은 적잖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정치논리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선뜻 투자에 나서는데 어려움이 있다.

특히 삼성처럼 핵심 계열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최대 50% 가까이 차지하는 상황에선 외국인 투자가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외부의 분석이다. 미국이 ‘적성국’으로 분류한 북한과의 사업협력을 외국인 투자가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볼 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세계 자본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월가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삼성이 대북사업을 망설이는 결정적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삼성의 주력 수출시장은 미국이다. 삼성이 대북사업에 적극 나설 경우, 미국 시장에서 이를 곱게 바라볼 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삼성으로선 ‘경제적 관점’에서 북한이 매력적인 투자처일지는 모르지만, 외국인 주주와 월가의 입김을 완전히 무시한 채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치명적’이진 않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 ‘주판알’ 두드리는 소리 요란한 삼성

하지만 상당수 많은 전문가들은 대북사업을 사업적 측면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지적한다.

실제 대북사업을 독점적으로 추진해온 현대그룹은 그룹의 캐시카우인 현대증권을 팔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북사업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대북사업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2007년 1,020여명에 달하던 직원은 지난해 320명으로 줄었다. 사업 규모로 봤을 때도 현대그룹 입장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나마 금강산과 개성 등 대북 관광사업의 호황을 누릴 때도 매출은 3,000여억원에 불과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그럼에도 현대가 대북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대북사업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한 사업적 가치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당장은 수익성이 없어도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고 대승적 차원에서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게 현대그룹의 신념인 것이다. 

지난 정권들이 대북사업과 관련해 삼성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자금력이든, 추진력이든, 조직력이든, 상징적 측면에서든 모든 면에서 삼성을 넘어설 기업은 없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통일과 그에 수반된 대북사업은 ‘삼성’이 나서는 게 적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북한 측에서도 삼성의 대북 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이 북한판 실리콘밸리 조성을 구상하며 외국 자본 유치 의지를 적극 표명한 것도 삼성에 대한 북한식 ‘러브콜’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절인 2000년도엔 이건희 회장의 방북 가능성까지 직접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북한이 남북 경협 사업 문제로 방북한 삼성 실무진을 통해 수차례 이건희 회장의 방북을 요청한 것인데, 이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과 이건희 회장의  ‘경제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고조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각계에선 글로벌 기업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대북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은 물론, 북한에게도 경제기반 조성이라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삼성의 대북사업 진출이 가시화될 경우 국내 다른 기업들의 사업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연쇄적 효과가 크다는 점도 기대치를 높이는 배경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있었던 일간지 주최 좌담에서 “삼성을 포함해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삼성의 신수종 사업과 관련해 조언하자면 지정학적 특수성을 감안해 대북사업을 삼성이 주도해 주길 바란다. 앞서 몇몇 대기업이 시도하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만큼 삼성이 성공시키면 역사에 길이 남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 “남북경협은 사업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더니…

그런 점에서 지난 2007년 이 회장의 발언은 더욱 주목된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경협은 민족문제”라면서 “사업으로 생각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 보고회’에 참석해 “남북 경협은 단순히 사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국가와 한반도 민족의 장래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개별 공장, 경영권 등 이런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대북 사업은 민족 문제인 만큼 단순한 ‘비즈니스(사업)’으로 생각하지 말고 통 크게 다가가야 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삼성이 대북사업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시그널로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7여년가 흐른 지금, 그리고 일흔을 넘긴 이 회장은 그때의 발언을 새까맣게 잊은 듯 보인다. 나이가 든 탓이라고 보기엔 그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다. 지금까지도 ‘관리의 삼성’답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겠다’는 계산이라면 당시 이 회장은 이런 말을 아예 입 밖에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력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겠다고 하면서 체계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 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통일 준비를 선포한 셈으로, 국민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통일 한반도에 대해 어느 때 보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대북사업을 두고 기나긴 시간동안 주판알만 두드리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번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식으로 화답할 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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