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2월 하순에 친구들과 추자도와 제주도에 다녀왔네. 원래는 25일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에 갔다가 배로 추자도에 들어가서 올레 길을 일주하고, 26일에 제주도에 돌아와 한라산을 등반할 예정이었지. 갈매기와 동박새의 울음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벗 삼아 봄기운이 완연한 섬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걸을 생각을 하니 떠나기 전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더군. 밤새 내내 눈앞에 남쪽 섬에서 만날 동백꽃과 유채꽃 등 봄꽃들만 아른거리더군.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이면 으레 그랬던 것처럼 잠을 설치고 말았네. 그래도 2박3일 동안의 섬 여행을 생각하니 전혀 피곤하지 않더군.
 
이른 아침에 떠나는 비행기라 지하철로 가면 늦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에 갔네. 그런데 청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반도 상공을 뒤덮은 미세먼지와 짙은 안개 때문에 항공기가 뜨지 못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더군.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인데 포기할 수가 없어서 목포로 가서 배를 타고 추자도에 들어갔네. 이날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시들이 납과 카드뮴 등 유해물질을 잔뜩 포함한 중국발 미세먼지로 뒤덮였다고 하더군. 예정대로 3일 동안 추자도와 제주도에 머물다가 돌아왔지만, 3일 내내 푸른 하늘은 전혀  볼 수 없었네. 내 삶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중국의 산업화가 내 여행을 망쳐버린 셈이지.
 
우리나라 대기 중에 있는 초미세먼지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해서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에 유입된 것이라고 하더군. 그러니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 그런데도 한반도 대기오염의 질과 양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 베이징의 미세먼지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으니 국민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네. 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1000㎍/㎥를 넘나들고 있는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대재앙(Airpocalypse)을 우려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더군. 내가 걱정하는 건 미세먼지가 섞인 스모그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일세. 1952년 12월에 5일 동안의 고농도 대기오염으로 4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숨졌던 영국의 런던시가 이 스모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기까지 장장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앞으로 몇 십년동안 중국에서 날라 오는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봄에도 푸른 하늘과 예쁜 봄꽃들을 보며 즐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맥이 빠지는군. 이른바 ‘인생의 제3기’를 자연과 함께 지내다가 갈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런 ‘우울한 봄’이 우리 인간들이 잘(?) 살아보겠다고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한 결과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지향하는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자주, 더 강력한 미세먼지와 황사의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 중국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게 어디 그들만의 잘못인가? 그들보다 먼저 더 잘 먹고 더 잘 살았던 우리들 잘못도 크지.

뒤돌아보면, 중국발 미세먼지와 황사 이전에도 우리의 봄은 산업화로 인해 레이첼 카슨이 말한 ‘침묵의 봄’이 되어가고 있었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보았던 것들 생각나지? 봄이면 저 멀리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보리밭 위에서는 종달새들이 곡예비행을 하면서 놀고 있었던 풍경 말일세. 그러면 우리들도 보리밭에서 종달새 알을 찾으며 함께 놀았었지. 그때쯤이면 강남에 갔던 제비들도 돌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그런데 지금 그런 종달새나 제비를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그런 새들은 정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지금 내 책상에는 레이첼 카슨의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작은 책이 놓여 있네. 자연과 사귀며 기뻐하고 놀라는 일이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하고 있는 책이라네. "어린이 앞의 세상은 신선하고, 새롭고, 아름다우며,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득하다. 어른들의 가장 큰 불행은 아름다운 것,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추구하는 순수한 본능이 흐려졌다는 데 있다.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상실하는 일은 심지어 어른이 되기 전에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만약 모든 어린이들을 곁에서 지켜주는 착한 요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부탁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지닌 자연에 대한 경이의 감정이 언제까지라도 계속되게 해달라고." 손자손녀를 키우고 있는 나 같은 할아버지나 나이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이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일세.
  
난 아직 어린 우리 손자손녀들이 환경오염으로 반쯤 죽은 지구에서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네. 서울에서 자라는 유아와 아동 5명 중 1명이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더군. 지금처럼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미국식 삶의 방식이 지속되는 한 점점 더 많은 애들이 새로운 질병으로 고생할 게 뻔하지. 그들도 예전 우리들처럼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면서’ 어린 시절을 건강하게 보냈으면 좋겠는데, 봄이 미세먼지 속으로 실종되어버렸으니….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3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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