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이순에 들어선 나이지만, 난 아직도 영국 시인 엘리엇(T. S. Eliot)이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4월이 오면 35여 년 전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네. 지금 대통령을 하시는 분의 아버지가 마치 군왕처럼 군림하던 유신 독재의 암담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4월이 오면 대학 교정은 활기가 넘쳤었지. 4 · 19 혁명을 기념하는 행사 준비로 바쁘게 뛰어다니던 자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구먼.

우리 대학 다닐 땐 4월은 ‘데모의 계절’이었네. 서울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아우성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5월 중순 경이면 절정에 달하곤 했었지. 그래서 우리에게 4월은 엘리엇에게보다도 더 ‘잔인한 달’이었던 것 같네. 4 · 19에 시작된 유신독재 철폐 시위가 5월과 6월까지 계속되면 휴교령이 내리거나 대학들이 알아서 종강을 서둘렀지. 되돌아보면 우리가 다닌 대학 8학기 가운데 16주 수업을 다 마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네. 그래도 그 때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꽤 부자가 된 것 아닌가? 그런 걸 보면 대학 교육의 양과 질이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과 꼭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같이 보이지 않네만…. 그런데도 대학을 이른바 ‘산업역군’을 생산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지 못해 노심초사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유신이나 5공의 군사독재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일세. 자넨 우습지 않는가?

4월이면 날마다 하루 일과 같은 데모를 끝낸 뒤에 학교 앞 선술집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면서 울분을 토하던 밤들이 생각나네. 우린 술이 좀 오르면 <선구자>와 <아침이슬>을 부르고, 김지하, 김수영, 신동엽 시인 등이 쓴 시들을 읊어댔지. 아직 치열한 사회과학 이론들의 세례를 받지 못한 세대였던 우리는 데모도 꽤 낭만적으로 했던 것 같네. 꼭 그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70년대 학번들이 한 방향으로만 일사분란하게 달려갔던 이른바 ‘386세대’보다 변절자가 적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 요즘 종편에서 극우세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분들 중에는 80년대에 골수 주사파였던 분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네.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이념에만 매몰되다 보면, ‘주의’만 보이고 ‘주의’의 노예가 되기 쉬운 법이네. 이념의 내용과 비전보다는 껍데기만 보고 달려들었던 사람들이 변절도 쉽게 하는 법이네.

껍데기 말이 나오니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생각나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갑자기 눈물이 나는군. 그때도 가끔 시와 막걸리와 하수상한 시절에 취해 울곤 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껍데기들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 내가 좀 여린 사람인 건 자네도 알지? 그런다고 비웃지는 말게나.

젊었을 때 좋아했던 시인인지라 4월이면 무의식적으로 신동엽의 시집을 끄집어내게 되는구먼. 창작과비평사에서 1989년에 그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서정시와 참여시들을 모아 놓은 선집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인데, 거기에 있는 시들이 다 좋지만, 난 토속적인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香아>라는 시를 무척 좋아하네. 어렸을 때 우리들이 살았던 고향의 모습을 떠올려주는 아름다운 시여서 자주 읊조리고 있지. 좀 길더라도 소리 내서 읽어보시게나. “향아 너의 고운 얼굴 조석으로 우물가에 비최이던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자// 수 수수럭거리는 수수밭 사이 걸찍스런 웃음들 들려나오며 호미와 바구니를 든 환한 얼굴 그림처럼 나타나던 석양……// 구슬처럼 흘러가는 냇물가 맨발을 담그고 늘어 앉아 빨래들을 두드리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눈동자를 보아라 향아 회올리는 무지개빛 허울의 눈부심에 넋 빼앗기지 말고/ 철 따라 푸짐히 두레를 먹던 정자나무 마을로 돌아가자 미끈덩한 기생충의 생리와 허식에 인이 박히기 전으로 눈빛 아침처럼 빛나던 우리들의 고향 병들지 않은 젊음으로 찾아가자꾸나// 항아 허물어질까 두렵노라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음의 흉내랑 그만 내자/ 들국화처럼 소박한 목숨을 가꾸기 위하여 맨발을 벗고 콩바심하던 차라리 그 미개지로 가자 달이 뜨는 명절밤 비단치마를 나부끼며 떼지어 춤추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냇물 굽이치는 싱싱한 마음밭으로 돌아가자.”

이미 “회올리는 무지개빛 허울의 눈부심에 넋”을 송두리 채 빼앗기고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음의 흉내”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은 이런 시를 이해나 할까? 아무리 서구화된 그들의 감성일지라도 그들의 유전자 속에는 이런 목가적인 삶을 희구하는 우리 선조들의 유전형질이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그들의 토속적 감수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저런 시들을 자주 읽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나이든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먼.

자네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읽어 보았나? 가정에 얽매여 그냥 ‘살기 위해 살아가는’ 4·19세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시인데, 우리들의 모습도 그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씁쓸하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국가와 자식들을 위해 한 평생 열심히 일만 했으면서도 자신들의 노년을 위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베비붐세대’라 이해도 되지만, 우리 세대들이 너무나 쉽게 보수화되어버린 것 같아서 섭섭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네. 그러니 허위. 불의, 외세 등의 껍데기를 단호하게 배격했던 신동엽 시인의 기개가 더 그리워지는구먼.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그 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시인은 외쳤는데…. 난 내일 대학을 함께 다녔던 친구들과 강화도 고려산으로 진달래꽃 구경 갈 예정이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