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몰한 세월호.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세월호 침몰 참사는 피해자와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사고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이후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후진성은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세월호 침몰 참사는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가 봐왔던, 우리의 마음을 찢어놓았던 과거의 참사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20년 전, 30년 전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 천안함(위)과 세월호(아래).

◇ 계속되는 대형 선박사고… 해양 구조 시스템은 어디로

세월호에는 476명이 탑승해있었다. 그 중 현재까지 살아 돌아온 이들은 174명이다. 실종자와 사망자는 302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런 대형 선박사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형 선박사고는 지난 1953년 330명의 사망자와 32명의 실종자를 낳은 창경호 침몰 사고 이후 대략 10년에 한 번 꼴로 꾸준히 반복돼왔다. 그때마다 사망자는 수백 명에 달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서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1993년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땐 292명이 사망했다. 일사불란한 구조가 이뤄지지 않아 희생자들을 수장시킨 것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 당국은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도 허술한 모습만 노출했다.

해양 사고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사고 초기 1분 1초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생존자와 희생자가 갈린다. 빠른 판단과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잘 훈련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20년 전 서해훼리호, 4년 전 천안함 사태를 겪은 우리의 해양 구조 시스템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상 크고 작은 선박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답답한 현실이다.
 

▲ 세월호 침몰 참사(왼쪽)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오른쪽).

◇ ‘기억 상실증’에 빠진 사회가 만든 대형 참사

세월호 침몰이 대참사로 이어진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만큼 사고를 막을 기회도 많았다는데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들만 보더라도 세월호는 언제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일본에서 18년을 운항한 ‘늙은 배’였고, 석연치 않은 구조 변경도 이뤄졌다. 그리고 이런 세월호를 방치한 것은 결국 허술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었다.

여기에 각종 안전불감증이 만성화되면서 세월호를 바다에 침몰시켰다. 즉, 차곡차곡 문제점들이 쌓여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시계를 1990년대로 돌려보자.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는 가히 충격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사고들 역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쌓인 결과였다.

세월호를 ‘바다의 삼풍백화점 사태’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쌓여가던 문제점 중 하나만 방향을 돌렸더라도 대형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안전불감증에 대한 논란은 늘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안전 관리의 중요성은 잊혀 진다. 자연스레 대형 참사는 또 발생하고, 그제야 안전 관리의 중요성 역시 다시 부각된다. 사고와 안전 관리 강조, 망각이 무한 반복된다. 마치 ‘기억 상실증’에 빠진 사회와 같다.

다리 붕괴와 백화점 붕괴, 여객선 침몰은 각각 다른 대형 참사가 아니다. 장소와 성격만 다를 뿐 결국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이 집약된 참사다.
 

▲ 지난 2009년 씨랜드 화재 참사 10주기 추모행사(맨 위), 경우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합동 분향소(가운데), 세월호 침몰 참사 임시 합동 분향소(아래).

◇ 어른들 잘못에 희생되는 아이들

세월호 침몰 참사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배에 타고 있었던 학생들 때문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중 살아 돌아온 것은 75명뿐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또 다시 아이들이 희생된 것이다.

사회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듯, 어른들 역시 아이들의 안전과 꿈, 미래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어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오점을 남겼다. 그 사이 학생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이런 면에서 지난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와 닮아있다. 유치원생들이 여름수련회를 위해 방문한 씨랜드에서 새벽 시간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19명의 어린 유치원생이 목숨을 잃었다.

씨랜드 화재 참사를 낳은 것 역시 어른들이었다. 숙소는 화재에 취약하고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박스였다. 좁은 진입로는 소방차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어른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의 희생양 역시 대부분 이제 갓 대학 새내기가 된 학생들이었다. 이 참사 역시 부실시공에서부터 안전 관리 부실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의 잘못이 빚어낸 결과였다.

아이돌그룹 H.O.T는 씨랜드 화재 참사 이후 ‘아이야’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의 가사 중엔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 언제까지 돌이킬 수 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텐가’라는 부분이 있다. 1999년에 발표된 이 곡의 가사는 2014년 지금 상황과도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 24일 임시휴교 후 첫 등교를 시작한 안산단원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모습.

◇ 이제는 달라져야할 때

대한민국은 지금 세월호 침몰 참사 후폭풍에 직면해있다. 각종 점검과 안전 관리 및 재발방지 대책이 부랴부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직후 전국의 유람선과 여객선은 안전점검으로 분주했다. 희생자 중 상당수가 학생인 탓에 각종 학생 관련 시설 역시 비상이 걸렸다. 심지어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

▲ 지난 22일 서울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들고 있다.
면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에 대한 수사가 전 방위로 확대됨에 따라 부정행위들도 속속 들어날 전망이다. 각종 부정행위에 관여한 인물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고, 안전규제 강화 등 후속조치도 이어질 것이다.

사고 9일째로 접어들자 뜨거웠던 관심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현지 자원봉사와 각종 기부, 분향소 조문 등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사고 초기에 비해 많이 잠잠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세월호를 찾아볼 수 없다.

너무나 낯익은 모습이다. 그리고 너무나 친숙한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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