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호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8일 대한항공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나이스신용평가도 ‘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으로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한진해운’ 탓이다. 한국신용평가는 “2011년 이후 업계 수익성이 저하된 상황에서 대규모 항공기 도입 정책 추진으로 재무적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진해운 자금지원과 신용위험 연계 가능성이 커져 과거와는 달리 대한항공의 금융시장 접근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쉽게 말해 대한항공이 업황불황에 허덕이는 한진해운 지원까지 나서면서 동반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진해운으로 인해 대한항공까지 위태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지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재무부담도 한층 커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1986년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는 조양호 회장은 지난 4월 한진해운을 품에 안으며 ‘한진해운 부활’을 자신한 바 있다. 하지만,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 대한항공 위기로 몰고 간 ‘한진해운 리스크’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품에 안은 것은 지난 4월 29일. 당시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을 꿈꾸던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해운업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결국 한진해운의 핵심사업을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의 일부 사업만 떼어내 독립했고, 한진해운의 핵심사업은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으로 편입됐다. 이날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됐다.

당시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1,400%를 넘는 수준이었다.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부실 책임 역시 온전히 한진그룹이 떠안은 셈이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80년대, 잇따른 적자와 비효율적인 선박 도입으로 최악의 시기를 맞은 한진해운을 구했던 경험을 토대로 회사 정상화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심지어 조양호 회장은 이날 “한진해운이 흑자 전환할 때까지 연봉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한진해운 정상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지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이 약속한 자구계획 이행이 예상치 않게 삐거덕 거리면서 자금줄이 풀리지 않고 있어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보유중인 S-OIL 지분(3,100여만주)을 처분하고 노후 항공기와 기타 비영업용 자산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자구계획의 핵심인 지분 매각은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말 7만4,000원이었던 S-OIL 주가는 18일 현재 5만6,800원까지 떨어져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된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무보증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신규 항공기 도입계획이 계속해서 잡혀있어 대한항공의 재무안정성은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증권 분석가들은 올해 5,000억원가량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한진해운을 대한항공이 연결 자회사로 떠안게 됨에 따라 대한항공의 올해 연결기준 실적이 흑자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설상가상 한진해운이 내년까지 상환해야할 회사채 8,920억원도 대한항공에 부담을 주고 있다. 올해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이어, 추가적인 자금 지원이 예상된다.

결국, 대한항공도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업황불황에 허덕이는 한진해운 지원까지 나서면서 동반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말 기준 대한항공은 부채비율 908.3%, 차입금의존도 67.5%를 나타내고 있다.

▲ 대한항공 여객기. 해당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 없음.

◇ 조양호 회장이 내놓을 비장의 카드는?

사정이 이쯤되자, 업계에서는 조양호 회장이 ‘악수(惡手)’를 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결국 그룹 전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2일 논평을 통해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대한항공에 유동성 위기를 가져올 있다”면서 “대한항공 스스로도 재무 개선이 시급하고, S-OIL 지분 매각도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보유 현금을 부실 계열사 지원에 낭비할 때가 아니다. 대한항공이 계속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한다면 유동성 위기를 그룹 전체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 인수를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짚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모양새”라고 꼬집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자체 사업만으로도 힘든 가운데 한진해운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두고 한 평가다.

사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인수를 통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시너지 효과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고(故) 조중훈 선대회장의 ‘수송보국’ 경영철학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해운업체인 한진해운을 편입하면서 운송 전문 그룹으로 구색은 맞췄지만 변동성은 더욱 커졌다. 운송업의 특성상 경기에 민감한 만큼 세계 경기 호황과 불황에 따라 실적이 널뛰기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물론 조양호 회장은 여전히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진해운에 유상증자 이외에 추가적인 재무 지원 없이 내년 경영 정상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큰소리 쳤다. 지난 4월 한진해운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자리에서도 “이르면 내년, 길게는 3년 안에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와 흑자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영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진그룹 품에서 재도약을 꿈꾼 한진해운. 하지만 대한항공까지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자칫하다간 둘 다 날개가 꺾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조양호 회장이 어떤 카드로 이번 위기를 타개해 나갈지 그의 행보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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