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여름휴가는 다녀왔는가? 난 대학 친구들과 내일(8월 4일) 통영으로 떠날 예정인데, 거긴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하는군. 어렸을 때 만나 40여 년을 동고동락해 온 친구들과의 여행인데 비가 온들 대수인가? 거의 모든 친구들이 참여하는 여행이라 마음은 며칠 전부터 이미 통영에 가 있네. 날씨만 허락하면 사량도에도 들어가 지리산과 옥녀봉에도 오를 예정이네. 지금 자네에게 쓰고 있는 편지의 글씨들이 사량도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섬들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리는구먼. 즐거운 환시체험일세. 자넨 이렇게 기분이 좋을 때 찾는 음료가 뭔가? 난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마시면서 들떠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네만…

휴가철에 쓰는 편지이니 좀 가벼운 이야기나 나누세. 자네도 커피 즐겨 마시지? 한 식품회사의 계산에 의하면, 작년(2013년) 한국인들은 총 242억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는군. 국민 한 사람당 484잔, 하루 1.3잔을 마셨다는 얘기야. 어린이들을 제외하면 어른 한 사람당 하루 두 잔 이상 마셨다는 뜻이네. 게다가 지난해 음료시장 전체 매출의 53.1%를 커피가 차지했다고 하는군. 우리 대학 다닐 땐 다방에서나 맛 볼 수 있었던 커피가 지난 20여년 사이에 ‘국민음료’로 등극한 거지. 커피의 대중화… 무서운 속도 아닌가?

자네도 커피의 원산지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란 것은 알고 있지? 850년경에 에티오피아의 한 염소지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커피는 16세기까지만 해도 이슬람권에서만 마셨다네.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던 중세 유럽에서는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 ‘이슬람의 와인’, ‘악마의 음료’ 등으로 부르며 마시지 못하게 했지.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직접 맛을 보고 축복을 한 후에는 일부 귀족들과 부르주아지들이 마시기 시작하네. 17세기 중엽부터 런던, 파리, 빈 등에서는 커피하우스나 카페 등이 등장하여 커피를 팔기 시작하지.

하지만 사람들의 오랜 습관을 바꾸는 게 쉬운 것이 아님은 자네도 잘 알지?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함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어야만 바꿀 수 있는 거지. 커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대중화도 마찬가지이네. 볼프강 쉬벨부쉬는 『기호학의 역사』에서 “커피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음료”였기 때문에 대중화에 성공했다 말하고 있네. 무슨 뜻이냐고? 가벼운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더니 어려워진다고? 잠시 참고 들어보게나. 자네도 알다시피 유럽의 17세기는 근대 유럽 문명이 태동하던 이른바 합리주의의 세기이네. 합리성과 타산적 태도로 무장한 부르주와 계급이 등장하여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적인 산업화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뭐겠는가? 자본과 더불어 노동이 중요하지. 아무리 자본이 많아도 노동력이 없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어느 나라든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자들에게 ‘자조’와 ‘근면’ 같은 가치를 강조하고 내면화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되네. 유럽 사람들도 근대 이전에는 맥주나 포도주 같은 술이 일상적인 식량이며 음료였다네. 술을 영양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마셨다는 애길세. 그래서 17세기 유럽의 일일 평균 맥주 소비량이 한 사람당 3리터 정도였다고 하네. 남녀노소의 차이가 없었다 하는군. 어린이들도 마신거야.
  
이런 상황이었으니 당시 자본가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겠는가? 바로 그때 커피가 구세주로 등장한 거라네. 커피하우스에 모여 사업과 예술을 이야기하던 부르주아지들이 이성을 흐리게 하게 불필요한 욕망을 자극하는 맥주나 와인 같은 ‘알코올’을 노동자들의 일상에서 격리시키는 대안 음료를 발견한 거지. 밤새 마시면 마실수록 잠은 안 오고 정신이 맑아지는 각성작용이 강한 음료를 찾아낸 거지.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이 “이성의 활동을 증대시키고, 인지 과정들과 연이은 사고들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보다 분명하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정신 활동을 자극한다.”고 믿었던 부르주아지들은 그걸 노동자를 포함한 하층계급들에게도 마시게 만드네. 커피의 도움으로 알코올에 찌든 몸들이 깨어나 자본가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노동력으로 환골탈태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커피를 고도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음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당시 부르주아지들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그 많은 하층계급 구성원들이 마실 커피를 조달하는 방법이었네. 아라비아반도를 포함한 이슬람권에서 생산되는 커피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거든. 그래서 유럽의 부르주아지들은 커피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땅과 노동력을 찾게 되네. 자본주의적인 산업화와 식민지 개척을 먼저 시작했던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이 커피 재배가 용이한 땅을 찾아냈지. 인도네시아, 서인도제도, 브라질 등에 대규모 커피 농장이 만들어지네. 생산을 위한 물적 토대는 이루어진 거지.

하지만 무슨 상품이든 생산을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하네. 서인도제도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의 경우, 커피를 재배할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 매우 저렴한 원두를 유럽에 들여와야만 생존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도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는 거지. 그러니 아주 값싼 커피 농장 노동력이 필요할 수밖에. 그때 시작된 게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예무역이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잡혀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경작한 커피를 유럽에 싸게 들여와 노동자들에게 마시게 한 거지. 이런 점에서 커피는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이 배여 있는 ‘니그로의 땀’이고, ‘악마의 음료’야. 하지만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커피의 대중화 과정은 생각하지 않지. 왜냐고? 그 과정이 커피 향기와는 어울리지 않거든.

중세 유럽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업화 이전에는 술을 즐겨 마셨네. 우리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게. 집에 손님이 오면 부모님들이 무얼 접대했는가를. 아마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알 거네. 술이었네. 근대 이전에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술이 하나의 의식(ritual) 기능을 했네. 우리가 대학 다닐 때 술을 자주 마셨던 것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야. 개강과 종강을 빙자한 술자리, 학기마다 함께 갔던 야유회, 입영을 앞둔 친구와 밤샘 폭음 등이 일종의 통과의례였지. 그땐 반가운 친구나 후배 만나면 ‘대포 한잔 하세’가 반가운 인사였지.

하지만 요즘은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우리들도 그런 인사 잘 하지 않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커피 한 잔 할까’라고 말하더군. ‘차 한 잔 할까’라는 말도 듣기 어려워.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에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의식(ritual)이 된 거야. 의식은 일종의 관습이고 습관이야. 그래서 최승호 시인은 “오렌지 쥬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다닌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거지. 가벼운 이야기하자고 해놓고 너무 골치 아프게 했나? 그러면 커피는 마시지 말고 녹차나 한 잔 하게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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