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장, SKC와 4년간의 소송전 끝에 2억원대 배상 확정 판결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SK그룹 계열사인 SKC(회장 최신원)가 중소업체의 거래처를 빼앗고, 이면 계약 내용까지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2억원대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SKC 측은 “회사의 내부 결정 없이 작성된 허위 이면 계약서”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조모(50) 씨가 SKC 주식회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상고심에서 “조씨에게 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지난 2010년 조씨는 SKC 측이 독점판매 권한 등을 주겠다며 이면계약서를 작성해 거래처를 빼앗은 뒤 계약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며 32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4년간의 소송전 끝에 재판부는 조씨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배상 확정 판결’을 내렸다.

“SKC, 거래처 탈취 후 이면계약서 계약 내용 안 지켜

조씨가 법원에 주장한 내용은 이랬다. 조씨가 운영하는 회사는 1999년부터 SKC에서 열에 반응하는 의료기기용 특수필름(감열지)을 공급받아 국내에 판매했다. 이후 조씨의 회사는 2001년부터 영국의 유명 화학 회사인 ICI에도 감열지를 수출했다. 이듬해에는 ICI와의 거래량이 6배 이상 늘면서 회사의 매출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런데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SKC가 조씨 명의로 ICI 측에 공급자가 바뀌었다고 통보하고 ‘감열지’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래처를 빼앗긴 조씨가 거세게 항의하자, SKC 측은 별도의 계약을 제안했다. 직거래 판매 대금의 1.7%를 수수료로 지급하겠다는 약정을 체결해준 것. 또한 영국을 제외한 유럽 지역의 ‘감열지 독점 판매권’을 일정 기간 동안 조씨 회사에게 주겠다는 내용의 ‘이면계약서’도 작성해줬다.

하지만 이면계약서의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SKC 측은 오히려 조씨가 이면계약서를 위조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설령 자사 직원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더라도 내부 의사 결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조씨는 2010년 5월 계약 불이행 등을 이유로 SKC를 상대로 32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SKC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면계약서가 SKC 내부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2심은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이면계약서에 한 날인이 SKC의 의사에 의한 것임이 추정된다”며 SKC가 조씨에게 2억원대의 위약금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면계약서에 계약 당사자 모두의 직인과 인장이 날인돼 있고, 문서 내의 서명 또는 날인의 형식이 통일돼 있는 점 ▲조씨가 계약서를 위조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사문서위조죄로 고소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이면계약서가 SKC 측 의사와 상관없이 체결된 것으로 볼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대기업 입장에서 중소기업 거래처를 탈취한 것은 상도의 상 비난받을 여지가 많고 SKC가 영어를 모르는 조씨를 상대로 ICI와의 약정서를 영문으로 작성한 점 등은 문제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배상 금액은 이면 계약 금액 그대로 지급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어 감액한 금액인 2억원으로 정했다.

대법원은 최근 이같은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이 사문서(이면계약서)의 진정성립 추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며 “SK 측이 부담해야 할 위약금을 2억원으로 정한 원심의 결론도 수긍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SKC를 상대로 4년간 소송전을 펼쳐온 중소기업 사장은 일부나마 억울함을 해소하게 됐다. 

◇ 최신원 회장의 ‘상생경영’ 어디에?

▲ 최신원 SKC 회장
반면 SKC는 수억원대의 배상 책임과 함께 ‘중소기업의 거래처를 등쳤다’는 비난까지 받게 되는 우울한 상황을 맞게 됐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최신원 SKC 회장이 강조해온 ‘상생 경영’에도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낼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최신원 회장은 2000년부터 SKC 회장을 맡으며 ‘나눔경영’과 ‘상생경영’의 의지를 밝혀왔다.

올 초에도 최 회장은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에 참석해 “사회가 잘 되려면 중소기업들이 잘 돼야 한다”며 중소기업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 내용은 최 회장이 강조해온 ‘상생’과는 거리가 먼 행보라는 점에서 비난 여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SKC 측은 “재판부의 뜻을 존중한다”면서도 여전히 억울함을 피력했다. 

SKC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조씨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금액 32억 원 중에 2억원만 배상 판결이 나왔다”며 “조씨가 손해를 주장한 것 중에 일부만 인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비용도 조씨가 80%, SKC가 20% 부담하는 것으로 판결이 나왔다”며 이번 판결이 원고의 완전 승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 SKC “억울한 부분 많지만, 재판부 판결 존중”

또, SKC 관계자는 “법원은 이면계약서에 회사의 도장이 찍혀 있어서 효력을 인정했지만, 계약서 상 내용을 보면 누구나 상식 밖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면계약서의 허위 가능성을 계속 언급했다.

그러면서 ‘갑의 지위’를 이용해 조씨 회사의 거래처를 빼앗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SKC관계자는 “ICI에 대한 납품은 조씨 회사보다 네트웍스가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네티웍스의 회사 규모가 작다보니 이후 조씨 회사가 판매하게 됐다. 하지만 조씨가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보니, 거래처를 관리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우리가 판매금액 일부의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약정을 맺고, 거래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최종 판결이 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 것에 대해 SKC관계자는 “중소기업 상생을 중시해왔는데, 이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상생 문제에 대해선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