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이리와’ ‘업혀’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처음 참석한 이정현 의원에게 갑작스레 한마디 던졌다. 주춤하다 이내 말귀를 알아차린 이 최고위원은 수줍어했다. 해맑은 표정으로 등에 업혔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을 때 내는 소리란 뜻의 ‘어부바’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여당의 대표가 이 최고위원을 업는 것은 다름 아니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뢰의 표시이고, 다른 하나는 호남을 등에 업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김 대표는 지난 재보선 과정에서 중앙당의 지원도 없이 나 홀로 선거운동을 한 이 최고에게 ‘당선되면 업어주겠다’고 했었다. 그래, 가망이 별로 없을 걸로 여겼던 터라 미안해서 던진 한마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 새누리당 호남을 등에 업다

김 대표는 선거에서 살아 돌아온 그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고심 끝에 이정현을 최고위원으로 앉혔지만 그렇다고 달리 표현할 적절한 말도 없었던 터다. 하지만 ‘업혀’라는 한마디는 타이밍 상으로 절묘했고 그림도 좋았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이정현 의원을 업은 것이 아니라 순천 곡성 주민, 나아가 국민들을 업어드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님의 ‘꽃’에서 나오는 시 구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을 놓고 여야간 대치국면 속에서 벌어진 ‘어부바’ 장면을 곱게 볼 리 없는 쪽은 다름 아닌 새정치연합이다. 선거도 지고 세월호 재협상도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속이 상할대로 상했는데 박장대소로 웃는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가시 돋친 말로 한마디 내뱉는다. “김 대표가 업어줄 사람은 이정현이 아니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다”라고 말이다. 문재인 의원도 “시기가 어느 땐데 주제넘게 희희낙락 거리냐"며 돌직구를 던졌다. 새누리당도 이에 질세라 “세월호특별법 재협상 요구는 합의 파기이자 정치퇴보”라고 맞받아친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상황이다. 13일로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는 무산됐고 정국은 얼어붙고 말았다. 재협상 핵심의 하나인 청문회 증인 채택을 놓고 ‘김기춘 나와라’ ‘그러면 문제인도 출석해라’고 입씨름만 하다가 세월 가는 줄 모를까 우려된다.

유가족을 만나고 국민의 가슴에 엉킨 응어리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백번 옳다. 하지만 김 대표와 이 최고가 모처럼 만나 웃는 것을 빗대서 그렇게까지 무참하게 비꼬는 말을 하는 것은 조금은 속 좁게 느껴진다.

적어도 호남 가운데서도 특히 순천·곡성 주민들에게 만큼은 이정현이 등에 업히는 모습이 하나의 의미 있는 ‘꽃’으로 다가온 데서다.

◇ ‘서진정책’의 첫 걸음은 광양에서

새누리당은 14일 이정현의 지역구인 순천과 딱 붙어있는 광양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이번 광양 행은 이 최고가 선거과정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지역주의를 깨뜨리면서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김 대표로서는 이 최고에게 힘을 팍팍 실어주면서 반대급부로 호남표도 함께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26년 만에 여당의원으로 첫 당선된 이정현을 교두보로 삼아 전국 정당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새누리당의 호남을 향한 서진정책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시절부터 이뤄졌다. 기실 그 단초는 광주서을에 도전해 1%라는 초라한 성적을 낸 뒤 코가 석자로 빠져있던 이정현을 박 대표가 식사에 초대한 데서 제공된 셈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호남을 결코 포기하면 대권을 잡을 수 없다’고 요청했고 그 결과 호남에 대한 구애작전은 시작됐다.

구례에서 최고위원회를 개최하고 모내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폭설로 피해가 컸던 나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대표에서 물러나면서 호남에 대한 애정도 그나마 식어갔다. 그리고 중단됐고 그 의미는 퇴색됐다. 하지만 그 명맥을 조금이라도 이어가며 대신했던 게 이정현이 아닌가 싶다. 18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박 대표가 자신을 일편단심 의리로 지켜왔던 이정현을 22번째로 간신히 턱걸이 시킨 것은 모두가 아는 바다.

비록 비례지만 국회에 입성해서는 예결위원을 자청했고, 액수가 크던 작던 간에 창피(?)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남예산을 챙기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의 진정성은 공무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게 됐고, 이번 재보선에서도 표심으로 크게 작용했다. 정권 심판론을 입이 닳도록 외치다 이슈 선점에서 밀린 새정치연합도 따지고 보면 이정현 당선에 도움을 줬다.
 
지도부가 하루걸러 순천에 총출동 한 상황에서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가 실없이 던진 한마디는 유권자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이정현이 예산 폭탄을 준다는데 그거 마음대로 할 수 있나, 내가 반대할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민주당 간판만 달면 표를 몰아줬지만 당선되고 나면 지역구 일은 거들떠보지 않았던 게 야당의 행태였다. 한 푼의 예산을 호남으로 가져오도록 지원해야 할 원내대표가 고작 한다는 소리가 자당의 표를 구걸하기 위해 예산을 막겠다고 한 것은 선거 전략상 조금은 궁색해 보인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순천 곡성 사람들은 무척 속이 상해 있었다.

오죽했으면 이 최고가 “광주·전남 야당의원들은 앞으로 편한 세상 다 살았다”고 했겠는가.
  
◇ ‘지역구도 타파’는 의미있는 꽃 

호남이 표를 몰아준 것은 이정현의 진정성을 믿었던 것도 있지만 더 이상의 지역감정으로 호남이 피폐해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였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그토록 호남에 구애를 했던 박 대통령도 청와대만 들어가면서 등을 돌렸다.

중앙부처 공무원들 가운데 호남출신 고위직은 씨가 마를 정도다. 사람이 없다 보니 예산은커녕 지역에 꼭 필요한 현안사업도 챙겨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야당을 기대하는 것도 지칠대로 지쳤다. 이정현은 호남의 한을 자극했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간절함을 건드려 결과적으로 당선됐다.

이제부터 김 대표는 호남사람들이 바라는 그 의미를 되새기고 이번 최고위원회를 계기로 화합을 통한 지역감정 깨기에 나서야 한다. 과거처럼 대권 표가 아쉬우면 마치 금은보화를 줄 것처럼 읍소했다가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몰라요’ 하려면 차라리 안한 것만 못하다.

그래서 이명박도, 박근혜도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에게도 식상해 있는 것은 피장파장이다.
 
솔직히 말해 호남민심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정현 최고위원이 말했듯이 미친 듯이 일하고 싶은데 발목 걸고 딴지를 거는 정치인들이 부지기수로 많을 게다. 적어도 몇 십년동안의 호남 푸대접을 생각하면 이정현, 아니 박근혜 정권에서,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야당에서 이를 막는다면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으로 영·호남이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다가서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호남이 영남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영남은 호남에게로 다가와서/ ‘지역구도 타파’라는 의미 있는 꽃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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