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 경축사를 하고 있다.
[시사위크=최찬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고 화해·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드레스덴 구상’의 연장선에서 ‘환경·민생·문화의 통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비정치적인 부분에서 남북이 공동보조를 맞춘 뒤 점차 정치적인 영역까지 확대하겠다는 의지다.

8·15 경축사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 남북고위급접촉을 제안했다. 통일준비위원회 회의를 가진 직후 북한에 이 같은 제안을 했다.

연이은 박 대통령의 대북유화정책에도 북한은 오히려 남한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대화의지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 직후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남조선 집권자의 8·15 경축사라는 것은 북남관계 문제에 대한 똑똑한 해결책은 없고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으로서 실속이 없는 겉치레, 책임 전가로 일관된 진부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박 대통령 8·15 경축사에 북측 반발

노동신문은 또 “북남 협력의 길이 반통일적인 ‘5·24 조치’에 의해 꽉 막혀버렸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고 ‘환경, 민생, 문화의 통로’를 열자고 했으니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면서 ‘5·24 조치’ 해제 없이는 남북대화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도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경축사라는 데에는 오늘날 북남관계를 개선하는 데서 절박하게 나서는 문제들, 남조선 민심과 온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부응하는 내용들은 하나도 없고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내용들만이 열거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북남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을 위한 근본문제를 외면한 것으로서 논할만한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에 대해 북한이 격하게 반발하는 데는 ‘5·24 조치’가 자리하고 있다. 북한은 ‘5·24 조치’ 해제 없이 남북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5.24 조치란 지난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교역 중단 △방북 불허 △대북 신규 투자 불허 △대북 지원사업 원천적 보류 등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것을 말한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가 원안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 관계자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의 사과 없이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5·24 조치’ 해제 요구하는 북한

‘5·24 조치’에 발목이 잡혀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것도 박근혜 정부의 큰 짐이다. 그래서 내 놓은 안이 비정치적인 교류다. 북한이 비정치적인 부분인 ‘환경·민생·문화의 통로’에 동참할 경우, 점차 정치적인 영역으로 교류의 폭을 넓혀간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대북구상이다.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려야 하는데 이전 정부에서 일어난 일 중에 5·24 조치가 있다”며 “5·24가 풀리지 않으면 근본적 방향전환이 힘들다는 의견이 위원들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남북관계가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5·24 조치’ 해제가 필수적이란 점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무턱대고 ‘5·24 조치’를 해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사과 없이 ‘5·24 조치’를 해제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보수진영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교류를 시작하는 게 ‘5·24 조치’ 해제의 지름길이란 게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5·24 조치’ 해제를 놓고 남북이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다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도 중반을 훌쩍 넘기게 돼 이번 정부에서도 실질적인 남북교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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