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올해 초 7번째 편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3월부터 “부와 빈곤, 공정함과 정의, 투명성, 근대성, 세계화, 여성의 역할, 결혼의 본질, 권력의 유혹” 같은 우리 시대의 주요 문제들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여줬기 때문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작년에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는 말을 했었지. 그러면서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두 종교전문기자들과 2년에 걸쳐 나눈 대담을 엮은 책《교황 프란치스코》를 읽은 나의 생각을 자네에게 독후감 형식으로 전했고. 그런 교황께서 지난 며칠 동안 한국에 오셨다가 가셨네.

이번에 그가 이 땅에서 하신 말씀과 직접 보여주신 행동들을 보면서, 자본주의와 양극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가난한 이들을 우선하며, 동성애자를 껴안으려 하고, 사제와 신도의 현실 참여를 촉구한 교황의 과거 발언들이 즉흥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네. 교황이 《교황 프란치스코》에서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고의 미덕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사랑”이고,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극악한 죄는 “오만함”, 즉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말했던 까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네. 난 자네가 알다시피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이지만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직접 다가가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는 행동들을 보면서 “비바 파파!(Viva Papa)”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네. ‘비바 파파’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 “교황 만세!”일세.

특히 우리 국가와 사회가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던 세월호 유족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위로의 행동에서 난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았네. 성인이 누군가? 보통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귀가 열린 사람’이네. 언제나 열린 눈,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교황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일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며 살아가는 소인배들의 나라에 오랜만에 찾아온 성인이셨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는 정부 여당과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들의 민낯을 보시게.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뭔지도 모르는 소인배들의 뻔뻔하고 교만한 얼굴과 유가족들이 선물한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교황의 넓은 가슴이 자꾸 함께 떠오르는구먼.        

교황은《교황 프란치스코》에서 사람을 정의하고 사람의 행위를 요약하는 세 가지 단어를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네.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허락을 구하는 사람은 겸손하고, 사교적이며, 화합할 줄 알고, 무슨 일에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영혼에서 피어난 꽃과 같은 존재이며, 자신은 용서를 구할 일을 전혀 한 적이 없다는 사람은 교만이라는 최악의 죄를 저지는 것과 같다는 거지. 그래서 교황은 “세 가지 단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가지치기가 너무 일찍 이루어졌거나 가지치기가 잘못된 사람입니다.”고 말하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네.   

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이른바 ‘능력’ 있고 강한 자들에게만 더 많은 것을 주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게 통탄스럽네. 못난 사람들과도 골고루 나누면서 살아가는 게 정의로운 세상인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세상이 되어버렸네.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모두 제 잇속만 챙기고, 이른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삭막한 세상이 되어버렸네.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마저도 빨갱이로 매도하는 나라 대한민국.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삭막하고 잔인한 전쟁터로 변한 이유가 뭘까? 맹자가 말하는 ‘본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남의 아픔을 보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측은지심이 사라졌기 때문이지. 대통령을 비롯한 이 나라의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 돈과 권력에 부당하게 억눌려 살고 있는 사람, 국가 권력의 횡포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고 함께 아파하고 신음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니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찧어질 수밖에. “사람이 본마음을 잃고도 찾으려 하지 않으니, 아, 슬프다. 닭이나 개가 집을 나가면 찾아 나설 줄은 아는데, 자기 마음이 나가 버리면 찾을 줄을 모른다. 배움의 길이 그 나가 버린 본마음을 찾는 것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이런 맹자의 질타를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상황이니 교황의 따뜻한 말과 소탈하고 겸손한 행동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 없지. 다시 한 번 “비바 파파!”일세.   

교황이 소박하게 살면서 가난을 실천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 이름으로 선택한 건 알고 있지? 그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의 한 부분을 읽으면서 글을 마치고 싶네.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주시옵소서./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 불화가 있는 곳에 하나 됨을, /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씨 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고개 숙여 성찰하고 부끄러워할 시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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