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3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수감 600일을 맞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최근 최 회장의 기부 움직임 등을 두고 특별사면이나 가석방을 위한 사전 움직임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고 귀추가 주목된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60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얘기다. 오는 23일이면 최태원 회장이 구치소에 수감된 지 600일이 된다. 약 1년 8개월여의 수감생활은 대기업 회장으로서는 최장기 기록이다. 그래서일까. 최근들어 최태원 회장의 근황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최태원 회장 측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점이다.

최근 최태원 회장이 옥중에서 임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에는 추석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이와 더불어 총수 부재 상태의 회사를 걱정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최 회장의 옥중편지는 SK 사내 인트라넷 ‘톡톡(toktok)’을 통해 공개됐고, 현재 SK 직원들은 수 백건이 넘는 댓글을 달고 격려와 위로의 뜻을 보내고 있다.

◇ ‘씩씩했던’ 최태원, 최근들어 ‘건강이상’ 강조

최 회장의 옥중편지가 공개되면서, 그의 건강 등 옥중생활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집중되고 있다.

교정당국에 따르면 최 회장은 6.56㎡(1.9평) 크기로 접이식 매트리스와 TV, 1인용 책상 겸 밥상, 세면대, 화장실 등이 갖춰진 독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올해 5월 서울구치소에서 의정부교도소로 옮긴 최 회장은 매일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취침하는 통상의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의 ‘건강문제’다. 각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SK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최 회장은 현재 고질병이던 허리의 통증이 악화된 상태고, 시력은 물론 체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다.

실제 최 회장을 면회하고 온 측근들과 SK 관계자들은 “최 회장이 교도소 맨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깐 채 잠을 자다보니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 통증이 심해졌고, 어두운 교도소 안에서 성경공부와 독서에 몰두하느라 시력도 매우 악화돼 있다”고 전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흰머리가 많이 늘어 뵙기에 반백이 넘을 정도라 건강이 걱정돼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수형기간이 2년이 돼가다 보니 심신이 무척 지쳐보였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구속 수감 된 지 1년 7개월째가 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미래경영을 구상하는 등 구속 수감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는가 하면, “최 회장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면회객들이 오면 농담을 할 정도로 적응을 잘 한다”는 내용의 면회 후일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일부 인사는 “(최 회장이)사업상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술도 마시지 않고 독서와 명상, 가벼운 운동을 해서 그런지 건강 상태가 좋아 보였으며 잘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 회장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최 회장이 여유롭고 호화스런 생활을 해온 재벌 총수라는 점에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교도소 생활에 ‘문제없이’ 적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건강악화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다소 공교롭다.

실제 그동안 그룹 측은 물론 최 회장의 측근들조차 그의 옥중생활에 대해 “모범적”이라고 입을 모았고, 건강에 대해서도 말을 극도로 아껴왔다. 구속되기 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이마저도 괜한 오해를 불러올까 싶어 “잘 견디고 있다”는 정도로 말을 아껴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알려지고 있는 내용은 그동안의 분위기와 전혀 달라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회장 ‘사면’ 내지는 ‘가석방’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 회장의 건강악화설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설’이 흘러나오는 시기에 불거졌다. 얼마 전 최 회장이 지난해 받은 보수 전액을 사회적 기업 지원과 출소자 자활사업에 기부한 점도 오해를 사고 있는 대목이다. 특히 최근들어 국내 일간지에 SK그룹 기업광고가 연이어 노출되고 있는 점도 석연찮다. 실제 일부 언론에서는 ‘최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요지의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 재판과정서 ‘계속된 거짓말’, 국민정서 싸늘

재계에서는 최근 정부가 기업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해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최 회장이 가석방의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는 최근 상황은 최 회장에게 있어 의외의 호재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이 사면이나 가석방 없이 형기를 다 마칠 경우 2017년 1월에나 출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이 교도소에서 합법적으로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앞서 언급했듯, 가석방과 특별사면 두 가지다. 만약 ‘특별사면’을 노린다면 연말이 유력하다. 또, 형량의 3분의 1을 복역했기 때문에 ‘가석방’은 현재 시점에서도 가능하다.

문제는 여론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일단 재벌 총수로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해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국민적 정서가 여전히 싸늘하다는 점에선 사정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먼저, 가석방은 최 회장이 수용돼 있는 교도소장만 신청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최 회장이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만 교도소장 입장에선 ‘대기업 총수 봐주기’나, 나아가 ‘대기업으로부터 특혜 및 유착관계 의혹’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런 대목이다.

‘특별사면’은 더 빠듯해 보인다.

다수의 법조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지적한다. 최 회장이 ‘계속되는 거짓말’이 그것이다. 최 회장은 검찰 조사와 1심, 항소심 공판을 거치면서 제각각 다른 주장을 폈다. 재판이 이어지는 내내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말로 일관했고, 상항이 불리해지자 항소심에서는 펀드 출자 지시를 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오죽하면 재판부가 “최 회장 형제의 태도는 제대로 된 준법정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힘을 더 믿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법조계에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나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데 반해, 최태원 회장만 실형 판결을 받은 것도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진정성은커녕 책임을 전가시키는 최 회장의 모습은 국민들과 재판부를 실망감에 젖게 만들었고, 반복된 거짓말은 재판부와 국민감정을 거슬렀다. ‘최태원 사면불가론’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이다.

건강 문제가 가석방 혹은 특별사면의 ‘명분’이 될지도 미지수다. 재판에 회부된 상당수 대기업 오너들은 ‘건강악화’를 이유로 교도소 밖에서 재판을 받거나 실형을 피하고 면죄부를 받기도 하지만, 최근 건강문제로 집행유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이재현 회장의 상태와 비교하면 최 회장은 ‘건강’을 무기로 여론전을 펼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최근 최태원 회장을 둘러싼 심상찮은 움직임은 오비이락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국민적 정서는 여전히 ‘사면불가론’이 강한 가운데, 수감생활 600일을 맞는 최 회장의 고민은 깊어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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