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중앙대학교 이사로 선임됐다. 맏형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이사직을 사임하고, 그 자리를 박용만 회장이 채운 것이다. ‘끝나지 않은’ 두산의 중앙대 인수 ‘잔혹사’에 어떤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중앙대는 지난 9월 25일 열린 이사회에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을 새 이사로 선임했다. 박용만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이사직을 사임한 박용곤 명예회장 후임으로 추천됐고, 이날 참석한 이사 9명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박용만 회장의 임기는 우선 기존 박용곤 명예회장의 임기인 내년 5월 16일까지다.

당시 이사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중앙대 이사회는 박용만 회장에 대해 “두산그룹의 학교법인 경영참여 이후 지난 6년간 중앙대는 국내 타 대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며 “이 같은 중장기 발전계획에 보다 박차를 가하기 위해 박용만 회장을 법인 이사로 추대할 것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두산가(家) 형제들은 중앙대 이사회에 계속해서 3명의 이름을 올려놓게 됐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중앙대 이사장을,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과 박용만 회장이 이사를 맡게 된 것이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은 박용만 회장이 선임된 날 중임이 결정됐다. 박용성 회장은 3남,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은 4남, 박용만 회장은 5남이다. 다만, 박용만 회장은 동생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과 함께 다른 형제들과는 이복형제 지간이다.

◇ ‘두산대학교’ 떠난 ‘중앙대 학생들’

박용만 회장이 두산 이사로 선임되기 5개월 전인 지난 5월로 시계를 돌려보자. 이날 아직 한창 젊은 한 대학생이 중앙대를 떠났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첫 신입생이었던 철학과 김창인(24·09학번) 씨다.

김창인 씨가 입학했을 당시 중앙대는 두산발(發) 폭풍에 휩싸인 상태였다.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에 자본주의로 무장한 ‘기업정신’이 몰아닥친 것이다. 자연히 중앙대는 극심한 풍파를 겪었다. 그리고 일부는 태풍에 부러진 나무처럼 꺾여 날아갔고, 일부는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그 자리를 지켰다. 반면 두산의 ‘중앙대 바꾸기’는 바람에 돛단 듯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 지난 2010년 중앙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학생들이 삭발식을 하며 이를 규탄하고 있는 모습.
두산의 중앙대 인수 선봉에 섰던 박용성 회장은 인수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밝혔다. 이는 두산 인수 이전과 이후의 중앙대를 완전히 갈라놓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두산에 인수된 직후 중앙대는 일방적인 학과구조조정과 불통, 학생 사찰 등 잇따라 파문을 일으켰고, 내부 갈등은 극에 달했다.

소위 ‘돈 되는’, 그리고 ‘인기 있는’ 학과는 키우고, 그렇지 않은 학과는 가차 없이 쳐냈다.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도 현격하게 바뀌었다. 순수한 ‘학문’ 보다는 박용성 회장이 말한 ‘자본주의 논리’가 더 앞에 선 것이다.

▲ 지난해 5월 중앙대의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방적이고 급격한 변화에 원래 학교의 주인이었던 학생들과 교수들은 대부분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졸지에 자신이 사랑하는 학과를 빼앗기게 된 이들은 공부와 연구를 해야 할 공간에서 투쟁을 해야 했다.

김창인 씨는 지난 2010년 4월 다른 학생과 함께 한강대교 위에 올라 현수막을 펼쳤다. 그 현수막에는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김창인 씨를 비롯해 중앙대 구조조정에 반발했던 일부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퇴학·정학 등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소송 끝에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학교는 또 다시 이들에게 무기·유기정학 조치를 내렸다.

또한 중앙대는 이 학생들에게 미행을 붙여 사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두산그룹 직원들이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심지어 중앙대는 학생들에게 수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기업’의 모습을 중앙대가 재현한 것이다.

결국 김창인 씨를 비롯한 이들은 차례로 학교를 떠났다. 이렇듯 이들이 꿈꾸고, 숨 쉬었던 중앙대는 두산 인수 후 완전히 다른 학교로 변해 이들을 내쫓았다.

▲ 지난해 5월 중앙대의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비범한 박용만 회장, 중앙대에선 어떨까

박용만 회장은 평소 보통의 재벌 총수와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 왔다. 유머러스하고, SNS를 통한 소통에도 능하다. 얼마 전엔 ‘아이스버킷챌린지’에 동참했고, 아이폰6 개봉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박용만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격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기업 재벌 총수로서 예민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간 것이다. 그중엔 경제민주화와 재벌의 사회적 책임에 관련된 내용도 많았다. 확실히 다른 재벌 총수보다 젊은이들에게 열린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박용만 회장이다.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그렇다면 박용만 회장이 가세한 중앙대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미지수다. 박용만 회장은 현재 한국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두산그룹과 대한상공회의소 일을 챙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그가 중앙대 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기는 어렵다.

한 대학관계자는 “박용만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빈자리를 채울 뿐, 실제 중앙대 관련 사안은 지금처럼 박용성 회장이 도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중앙대에 관심을 갖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박용만 회장은 지난 2010년 ‘중앙대 학생 사찰 파문’이 빚어졌을 당시 트위터 상에서 ‘시골의사’ 박경철 씨로부터 “중앙대 학생 사찰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는 질문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반나절 넘게 침묵하던 박용만 회장은 “중앙대 일은 박범훈 총장이 발표를 하셨더군요. 그것이 팩트(사실)입니다”라는 짧은 답변을 남긴 바 있다. 평소 그가 보여준 ‘화끈한 언행’과는 다른 신중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중앙대에 붙은 대자보.
두산 인수 이후 시작된 중앙대의 ‘잔혹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중앙대는 지난해 비인기학과 4개를 폐지했고, 지난 9월에는 대학원 구조조정을 통해 9개 학과를 폐지하기로 했다. 더불어 교수평가에서 5년 연속 최하 등급을 받은 4명의 교수에게 징계조치를 내렸다.

또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과 농성이 이어졌다. 당시 중앙대는 ‘구호 1번, 대자보 1개에 100만원’을 청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사람이 미래다’를 외치는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이 사람 냄새나는 중앙대를 만들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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