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희 승무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한국근대춤연구회·춤·자료관 연낙재>
[시사위크=한수인 기자] 최승희의 승무 사진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승희가 승무를 변용해 만든 작품을 시연하는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지난 19일 한국근대춤연구회·춤·자료관 연낙재는 “최근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이자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손자 이시이 노보루에게서 이 같은 사진을 기증받았다”고 밝히며 최승희 승무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최승희가 흰 저고리에 장삼을 걸치고, 머리에는 흰 고깔을 쓰고 어깨에는 가사를 걸친 채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한 최승희는 1930년대 중반 일본을 방문한 ‘근대 전통 춤의 아버지’ 한성준에게서 승무를 비롯한 전통 춤을 배웠다. 최승의는 이를 바탕으로 ‘초립동’, ‘화랑무’, ‘장구춤’, ‘천하대 장군’ 등 신무용사에 기념비로 꼽힐 만한 작품을 연달아 내어놓으며 세계 최고의 무용수로 우뚝 섰다.

최승희 승무 사진을 공개한 한국근대춤연구회의 회장 성기숙 교수는 “전통 승무의 형식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전통의 현대화’의 상징적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최승희는 일제 말기 일본의 강요를 이기지 못해 일본군 위문 공연을 하고, 일본 전통 무용을 소재로 삼아야만 했다. 이에 최승희는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일본의 압박을 벗어나려 했지만 광복 이후 친일파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최승희는 평소 “친일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렸으며, 결국 1946년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했다.

이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승희 무용연구소 소장 등을 지낸 최승희는 1958년 남편 안막이 숙청당한 이후 인민극장 청소부, 생산공장의 서클 지도원 등으로 전락했다. 이후 1967년 숙청당해 가택연금 처벌을 받았으며 196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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