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일보가 보도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 해당 문건의 핵심 내용은 ‘십상시 회동설’과 ‘김기춘 교체 여론 조작설’이다. 이에 청와대 측은 사실무근으로 밝혔으나 문건 작성자로 알려진 박모 경정과 그의 직속상관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 사진=세계일보 제공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급기야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 비서관이 ‘입’을 열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과 함께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그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으로 확산된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문건의 정확도는 0%”라며 “정윤회 씨는 (청와대에 들어온 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두 비서관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정 비서관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3인방은 ‘정윤회 문건’에 관련된 5명의 참모들과 함께 해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측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따라 ‘정윤회 문건’은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 1부는 1일 문건의 작성자로 지목된 박모 경정을 출국금지하며 본격적인 수사 착수를 알렸다.

◇ 정윤회 감찰 사실로… 박 경정 “무덤까지 갖고 갈 것”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박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작성해 당시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보고했다. 박 경정이 상관에게 보고한 문건의 정식 명칭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으로, 현재 청와대 내에서 사용되는 문건 양식과 같다. 작성 시점은 올해 1월6일이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의 공적 성격과 그 내용에 대해선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이 “공식 문서가 아니다”고 밝혔으나 ▲박 경정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할 당시 작성된 문건이라는 점 ▲관련 내용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구두로 보고된 점 ▲보도된 것과 유사한 내용의 다른 보고서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공문서에 가깝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는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8명의 참모들이 박 경정을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는 점에서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된 박모 경정이 1일 오전 재직 중인 서울 시내 한 경찰서로 출근해 잠시 머물다가 휴가를 내고 경찰서를 떠났다. 그는 문건 작성 여부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에 대해선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며 향후 검찰 조사에서도 묵비권 행사를 예고했다.
주목할 부분은 청와대의 기존 입장이 사뭇 달라졌다는 점이다. 당초 청와대는 “정 씨에 대한 감찰을 실시한 바 없다”고 반박했으나 결과적으로 정 씨의 감찰이 일정 부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문건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청와대의 반박에 신빙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청와대는 해당 문건에 대해 “사설 정보지의 풍문을 모아놓은 동향보고 수준에 불과하다”며 ‘찌라시’로 치부했다.

‘정윤회 문건’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바로 ‘십상시 회동설’과 ‘김기춘 교체 여론 조작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정 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월 2회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10여명과 회동을 갖고 청와대 내부 사정과 인사 문제를 논의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특히 정 씨는 김 비서실장의 연말 교체설을 정보지와 언론을 통해 “바람을 잡으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십상시’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하나같이 부인했다. 문건의 핵심 인물인 정 씨 역시 “통화기록이든 CCTV든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수사하라. 하나라도 잘못이 나오면 감옥에 가겠지만 허위로 밝혀지면 공격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 경정은 입을 닫았다.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박 경정은 “청와대가 해당 보고서를 ‘사설 정보지를 종합한 수준’이라고 폄하했으나 (직속 상관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음해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조 전 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의 갈등설이 제기된 이유다.

양측의 갈등설은 사실상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과 정 씨의 대리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과 가까운 사이라면, 문고리 3인방은 정 씨와 비선실세로 묶여있다.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이 1994년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됐을 당시 수사검사를 지낸 인연으로 친분을 이어왔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박 회장이 정 씨의 미행설에 맞대응 차원으로 조 전 비서관을 통해 감찰을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 청와대 전·현직 참모진 줄소환 예고… 정윤회, 참고인 신분

이와 관련, 조 전 비서관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는 직속 부하인 박 경정이 문건 작성 한 달 만에 경찰로 원대 복귀한 이후 지난 4월에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돌아갔다. 당시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의 사표에 대해 “본인이 인생의 다른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박 경정에 대한 인사도 “통상적”인 것으로 밝혔다. 특수수사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던 박 경정은 현재 일선 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사실상 좌천 인사라는 점에서 앙심을 품은 박 경정이 문건을 유출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현재 당사자는 “근무 당시 도난당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일단 검찰은 명예훼손 성립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문건 실체 확인에 나설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문건 작성자인 박 경정은 물론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조 전 비서관과 당시 이들에게 보고를 받은 홍 전 수석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정 씨는 참고인으로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검찰에 고소한 청와대 참모진 8명의 조사도 예고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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