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서술된 내용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발칵 뒤집혀졌다. 청와대에선 유감을 표명했고, 야권은 날을 세우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비화를 담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서문은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 그의 임기 마지막 날인 2013년 2월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원들과 이웃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청와대를 나선 MB는 그날 밤 11시59분, 서울 논현동 사저에서 국군통수권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계한 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청했다.

당시 MB의 소감은 “홀가분했다”로 표현됐다. 덧붙이자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열과 성을 다해 일하리라 다짐”한 만큼 “정말 쉬지 않고 뛰었고 신나게 일했다”는 게 MB의 설명이다. MB가 “다 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해냈다”고 확신한 이유다. 하지만 MB의 판단과 정치권의 해석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장 청와대에서도 ‘유감’을 표명했고, 야권은 날을 세웠다. 논란의 중심에 선 MB의 회고록 속 쟁점은 무엇일까.

쟁점 1. 남북정성회담 무산 “북한 탓”

MB의 회고록에 따르면,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8월 조문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필두로 수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요청했다. 문제는 정상회담의 대가로 옥수수 10만t, 쌀 40만t, 비료 30만t의 식량을 비롯해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와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제공 등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에 MB는 북핵과 국군포로·남북자 송환 논의 등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에는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남북의 입장차로 평행선을 달리던 정상회담 논의는 2010년 12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당시 북측에서 대좌(대령) 1명, 상좌(대령과 중령 사이) 1명, 통신원 2명이 비밀리에 서울에 들어와 협의한 것. 하지만 끝내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 MB는 회고록을 통해 “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서울을 방문했던 북측 인사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것이다. 당시 권력 세습을 준비하고 있던 김정은 측과 군부에 의해 제거됐다는 얘기도 들려왔다”고 밝혔다.

MB가 남북 간 물밑접촉을 공개하면서 청와대는 곤혹스런 입장에 놓였다. 올해 박근혜 정부가 세운 목표 중 하나인 통일조성 기반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남북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돈거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놀랍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회고록에) 남북 대화를 비롯해 외교 문제 등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쟁점 2. 세종시 수정안 부결 “박근혜 탓”

MB는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데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 토론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세종시 원안 통과를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반대 토론에 나서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는 게 MB의 설명이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서 제기된 논란.
논란이 된 것은 MB의 ‘근거 없는 추론’이다. MB는 회고록을 통해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면서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를 정운찬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 셈이다.

이에 청와대에선 ‘오해’로 설명한 뒤 ‘유감’을 표명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움 속에서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문제를 갖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것이 지금 정치공학적으로 해석되는 게 과연 우리나라나 국민이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쟁점 3. 자원외교 실패 논란 “한승수 탓”

MB는 여야 합의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자원외교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자원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라는 것. 때문에 “퇴임한 지 2년도 안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이 지적한 자원외교 실패를 ‘정치공세’로 규정한 셈이다.

도리어 MB는 해외 자원개발의 투자 회수율 측면에서 전임 노무현 정부보다 크게 앞선 실적을 공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인용해 “총 회수 전망액은 30조원으로 투자 대비 총회수율은 114.8%에 이른다”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투자된 해외 자원 사업의 총회수율 102.7%보다 12.1%포인트가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물론 회수율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앞서 자원외교 국조위원장인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투자 회수율이 85.8%인 반면 이명박 정부의 투자 회수율은 13.2%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측은 “노 의원은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사업을 대상으로 이미 회수한 금액(2014년 6월30일 기준)으로 회수율을 산정했고, MB 측은 공기업의 사업만을 대상으로 이미 회수한 금액 이외에 향후 추정되는 회수액을 더해 회수율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야권에서 MB의 과대포장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MB는 자원외교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 것과 달리 책임 논란에 대해선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지명했다. “해외 자원 개발의 총괄 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면서 당시 한 전 총리를 임명한 이유도 “외교 분야에 경륜이 많고 특히 자원 외교 부문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MB의 주장에 한 전 총리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으나, 정치권에선 MB가 ‘자원외교 특사’로 자임하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거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측근 감싸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쟁점 4. 4대강 살리기 사업 “강바닥 쓰레기만 286만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집필 작업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초 출간이 예고된 2월1일에 앞서 그 내용이 사전 유출돼 소동이 일기도 했다.
MB는 재임 당시 핵심 추진사업인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데 회고록의 35쪽 분량을 할애했다. 야권의 정치공세로 치부한 자원외교에 5쪽 분량을 기술했다는 점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MB의 애착이 엿보인다. MB는 “4대강 사업은 한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당시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대해서도 “강바닥에 나온 쓰레기 총량은 286만톤에 이르렀다”고 반박했다. “4대강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될 수 없다”는 게 MB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다. MB는 감사원이 지난 2013년 3월 발표한 감사 결과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대운하를 만들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대운하 사업은 MB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이에 MB는 “4대강 사업의 입찰 시공 과정에서 부정이나 불법행위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할 감사원이 ‘대운하 위장설’ 같은 것을 발표하는 행위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MB의 이 같은 주장은 수십조의 혈세가 낭비된 ‘환경파괴’ 사업이라는 야권의 주장과 전면 배치되면서 향후 정치권 공방을 예고했다. 실제 야권에선 4대강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다시 제기했다. 회고록이 공개된 다음날,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4대강으로 창출됐다는 일자리 34만개는 어디 갔고, 매년 수천억원씩 들어가는 수자원공사의 부채이자 등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꼬집었고, 같은 당 우윤근 원내대표는 “4대강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궤변에 동의할 국민은 없다”고 말했다.

쟁점 5.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노무현 탓”

MB는 집권 첫해인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로 홍역을 겪었다. 회고록에서 “국정 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 떨어지며 국정 운영의 동력이 급격히 상실됐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이와 관련, MB는 광우병 촛불시위 발단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MB는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08년 2월18일 청와대에서 나눈 노 전 대통령과의 대화를 공개하며 “(노 전 대통령은) 미국과 약속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다고 미국 의회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처리해 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미국과 FTA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하니 그때 가서 쇠고기 협상을 조건으로 내세워 자동차 재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라는 조언도 덧붙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측은 이를 사실무근으로 반박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의전비서관을 지낸 오상호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은 복수의 매체를 통해 “(MB가) 당선자 시절 찾아와 자신의 취임 전 쇠고기 수입협상을 마무리해달라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면서 “‘우리가 미국에 요구해야 할 것도 있으니 쇠고기 수입을 협상카드로 잘 이용하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에 MB도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회고록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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