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노자는 《도덕경》 제77장에서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높은 쪽은 누르고 낮은 쪽은 올립니다. 남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보태 줍니다.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칩니다.”라고 말했네.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공평하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정치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일깨우는 구절일세.

하늘의 도(道)가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는 게 무슨 뜻이겠나? 국궁이든 양궁이든 활(弓)의 모양을 상상해 보시게나. 활줄을 당기면 당길수록 활의 양 끝이 더 가까워지지. 도가 하는 일이 그와 비슷하다는 거네. 높은 것은 낮추고 낮은 것은 높여야 평평해지고, 남으면 덜고 부족하면 보태야 균형이 잡히네. 요즘 말로 바꾸면, 재산과 소득·권력·명예 등을 골고루 나누는 게 하늘의 도라는 뜻이야.

하지만 노자도 인간 세상은 하늘의 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네. 실제로 농경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 그런 '사람의 도'를 가장 노골적으로 찬미하는 이념이 신자유주의이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나라든 빈부의 격차가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지. 미국과 대한민국이 그런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대표적인 나라라는 건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많은 통계자료들이 보여주고 있네.    

작년 12월에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2010년에 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이 있었던 개인3122만 명의 소득 분포를 분석하여 발표한 논문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에 의하면, 전체 평균소득은 2046만원이지만 중간에 해당하는 중위소득은 1074만원으로 평균 소득의 52.5%이더군. 평균이 중위수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소득의 상위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걸 의미하네. 양극화가 심하다는 뜻이지. 연소득별로 분포를 봐도 1000만명 미만이 48.4%이고, 1000만원∼4000만원, 4000만원∼1억원, 1억원 이상 소득자는 각각 37.4%, 12.4%, 1.8%이더군. 아르바이트나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을 포함한 우리나라 모든 개인소득자들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하고 있다니 충격적이지 않는가?   

소득구간별 개인소득 분포를 이용해 분위별 소득 비중을 추정한 결과를 보면 더 심난하네. 20세 이상 성인 3797만 명을 기준으로 할 때 상위 10%에 해당하는 소득 10분위의 소득 비중이 전체의 48.05%를 차지했네. 그 중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전체의 12.97%였고. 반면 1분위부터 4분위까지인 소득 하위 40%는 전체 소득 중 2.05%만을 차지했더군. 우리 사회의 소득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야. OECD 국가들 중 가장 불평등 정도가 심한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미 악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네.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점점 심각해지는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노령화 등을 대비하기 위해선 복지를 확대할 수밖에 없고, 복지를 위해선 증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건 상식 아닐까?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만을 고집하고 있네. 지난 대선 때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선 매년 25조원 정도가 필요하다는데, 아직도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비과세 감면을 줄여서 재원을 마련한다고만 말하고 있네. 경기침체로 세금도 예정보다 10조원정도 적게 걷힌다고 하던데 그게 쉽겠나? 증세 없는 복지는 결국 복지를 확대할 생각이 없다는 게 아닐까? 내 눈에는 박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이네. 실제로 박 대통령의 많은 복지 공약들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대부분 축소되었거나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더 가관인 건 증세 없이 복지를 하려니 갖가지 꼼수를 쓸 수밖에 없다는 거네. 저소득층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담뱃세 같은 간접세를 올린 게 그 ‘꼼수 증세’의 대표적인 보기일세. 비정상을 정상화한다고 떠들었던 정부가 국민들을 속일 생각만 하고 있으니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에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것 같더군. 며칠 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새누리당 대표가 말했으니 뭔가 달라지겠지. 새로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도 언론 인터뷰 등에서 “증세 없는 복지 기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으니 기대해볼 수밖에.

앞에서 노자가 말한 ‘하늘의 도’가 근대의 사회과학적 용어로 ‘사회복지’일세. 넉넉한 사람들의 것을 덜어내서 모자라는 사람들을 보태주는 역할을 하는 게 복지국가이고. 물론 넉넉한 사람들의 것을 어느 정도 덜어낼 것인가는 국민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나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게 현대 ‘정치’의 주요 기능일세. 노자 시대에는 성인 같은 지도자가 혼자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만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지. 그러니 위기에 몰려서야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한 새누리당이 미덥지 않아도 기다려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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