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에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민족의 대명절’ 설이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왔다. 매년 돌아오는 설 명절이지만, 늘 설레는 것이 이날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고향과 가족, 그리고 따뜻하게 나누는 정과 덕담은 세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적잖은 비용, 답답한 교통체증 속에서도 우리가 설을 분주하게 보내는 이유다.

하지만 모두의 설이 따뜻하고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외롭고 추운 시간이 되곤 한다.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고공농성과 단식투쟁까지 벌이고 있는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중 하나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심각한 저임금 속에서 최소한의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했던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3월 나란히 노조를 설립했다. 그리고 ‘진짜 사장’인 원청의 책임 있는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내 4대 재벌에 속하는 두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지난해 10월~11월 나란히 노숙농성과 파업에 돌입했다.

이렇게 시작된 이들의 ‘길거리 투쟁’은 4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꿈쩍 않는 두 회사와 무관심한 여론 속에 이들의 외침은 길거리에서조차 외면 받아야했다. 결국 지난 6일, 양 노조 조합원 2명은 서울 한복판 명동에 위치한 옥외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또한 지난 10일부터는 일부 조합원들이 단식투쟁까지 돌입한 상태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해 맞는 설은 이처럼 처절하다. 고향이 아닌 길거리에서 맞는 설 명절을 앞두고 <시사위크>에서는 양 노조의 조합원 이진영(LG유플러스) 씨와 이상준(SK브로드밴드)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이진영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이하 LGU+)/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에서 호남지역 정책부장을 맡고 있는 이진영이다. 올해로 마흔이고, 아직 결혼은 안 했다. LG유플러스에서 일한 지는 약 2년 정도 됐다. 물론 통신업계에서 일한지는 10년이 넘는다.

이상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이하 SKB)/ 31살 이상준이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에서 조직부장을 맡고 있다. 집은 서울이고, 근무지는 마포지역이었다. 나 역시 미혼이고, 회사에서 일한지는 5년 쯤 된다.

우문이겠지만, 이번 설에 고향은 내려가시는지?

LGU+/ 원래 고향과 근무지가 전주다. 하지만 파업이 시작한 이후 농성을 위해 서울을 오가고 있고, 이번에 올라올 때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설 명절은 농성장에서 지낼 것이다. 다들 명절 분위기인데 우리만 이렇게 추운 곳에서 떨어야 한다는 것이 씁쓸하다.

SKB/ 다행히 집이 서울이다. 하지만 나 역시 가족이 아닌 농성장에서 설을 보낼 계획이다. 원청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해왔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한 설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걱정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정상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 이진영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정책부장.
두 노조는 나란히 설립됐고, 거의 똑같은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노조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이렇게 투쟁에 나선 이유 등이 궁금하다.

SKB/ 노조가 없을 땐 잘못된 부분을 회사에 말해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이었다. 다쳤을 때 산재처리를 해달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부당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일시에 다 바꿔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안전, 고용보장, 퇴직금 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그마저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고, 결국 노숙도 하고, 점거도 하고, 고공 농성도 하는 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LGU+/ 솔직히 처음엔 노조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다. 막상 노조를 만들고 참여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참 많다. 노조를 만든 이유와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것과 다단계 하도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근무시간, 안전문제, 감정노동 등 심각하게 열악한 근로환경의 개선도 중요한 문제다.

두 분 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을 것 같다. 이번 정권이 특징이 평범한 시민들을 ‘투사’로 만든다고 하지 않나. 종종 거친 충돌도 있었을 텐데 두렵진 않았는지.

SKB/ 정말 살면서 경찰서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경범죄조차도 어기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사회나 원청이 노동자들을 더 악에 받치게 만드는 것 같다. 노동자 입장에선 이걸 해결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점점 더 극으로 내몰리고, 치닫는 것이다.

LGU+/ 복합적이다. 두렵기도 하고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도 받았다. 정말 TV나 영화에서 보던 일이 나에게 벌어지니 생소하더라. 또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방향을 찾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무섭기도 재밌기도 했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옆에 동료들이 같이 있다 보니 힘이 많이 났다. 정말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겪는 것 같다.

노조하기 전에는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삶이었다. 그냥 한 건이라도 일 더하고 저녁때 술 한 잔 하고 자고 그런 삶이 반복됐다. 그런데 노조 활동을 하면서 이런 모든 일들을 겪어보니 마음가짐이나 모든 게 달라지더라.

▲ 이상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직국장.
지나가는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빨갱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SKB/ 대부분의 시민들은 어떻게 SK나 LG 같은 대기업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의아해한다. 얼마나 많은 요구를 했기에 그러느냐라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해주면 ‘대기업에서 왜 그런 것도 안 해주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또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가끔씩은 후원금이나 생수 같은 물품 등을 전해주시기도 한다.

LGU+/ 아마 여기 지나다니는 시민 분들도 열에 여덟아홉 이상은 똑같은 노동자일거라고 생각한다. 본인들도 결국 같은 입장이다. 어떤 회사에서 일하든, 어떤 일을 하든 월급을 받는 똑같은 노동자다. 아직도 일부 잘못된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다른 측면에서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이런 활동에 대해 불순한 세력이라느니, 배후에서 누군가 조종을 한다느니 하는 얼토당토 않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

SKB/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부작용도 적지 않다. 비정규직 문제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해결하지 못하고 대물림한다면 우리 아래 세대는 더욱 고통 받을 것이다. 꼭 어떤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향상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과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구본무 LG회장은 얼마 전에 자택 가사도우미 등을 통해 노조에게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논란을 빚었다. 그리고 그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여졌다. 최태원 SK회장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안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양 노조가 ‘진짜 사장’으로 지목하고 있는 사람에게 속 시원히 한 마디 한다면.

LGU+/ 정말 어처구니없는 가처분신청이다. 본인이 직접 제기한 것도 아니고, 일하는 사람들을 앞세워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게 더 웃기다. 있을 거 다 있는 사람이 뭐가 아쉽다고 그렇게 비겁하게 뒤에 숨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다.

SKB/ 자기 회사 계열사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사회적 기업을 논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안에서 좀 더 오래오래 깊이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때는 우리도 얼마든지 최태원 회장이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하고, 맞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이 있다면.

LGU+/ 당연한 말이겠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사측이 빨리 인정해서 원만하게 교섭이 타결되는 것이다. 빨리 현장,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SKB/ 지금 함께 나와 있는 동료들과 지난해부터 힘겹게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하루 빨리 우리가 있던 곳으로 복귀해 열심히 일만 했으면 좋겠다. 하나 덧붙이자면,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로 복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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