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31일, 연봉 5억원이 넘는 대기업 등기임원들의 보수가 공개됐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일부 재벌가 총수들의 보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부분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거나 아예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룹을 쥐락펴락할 권한은 누리면서 경영활동에 대한 법적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 재벌 총수, 등기이사 이름 빼는 진짜 이유

‘등기임원 연봉공개’의 취지는 선진적인 투명경영 정착이다. 쉽게 말해 ‘돈을 받을 만큼 일을 했느냐’다. 이익을 남겨 내부 배당잔치 혹은 연봉잔치를 벌이는 행태를 막기 위함으로, 사실 그동안 황제경영을 일삼는 오너들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공개대상이 ‘등기이사’로 한정된 탓에 제도의 기본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등기이사직에서 이름을 뺀 재벌 총수 일가들의 보수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범삼성가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비롯해 이명희 회장, 정재은 명예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오너 일가는 연봉이 공개되지 않았다. 모두 미등기 임원이어서다. 특히 정용진 부회장은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2013년 초) 등기이사직을 사임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직을 내놨다. 두산그룹의 경우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연봉도 공개되지 않았다. 모두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올해부터 연봉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일부 총수들은 실형을 선고받는 등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지만, 대부분 총수는 연봉 공개가 부담스러워 등기이사직을 내놨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국내 재계서열 1위인 ‘삼성’은 두 말 할 것 없다. 병상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08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경영에 복귀했지만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2008년 비자금 조성 의혹에 따른 특검으로 호되게 곤욕을 치른 뒤 법적책임이 뒤따르는 등기이사를 스스로 마다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복귀 이후 연봉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용`이서현, 삼성 3세들 이중행태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연봉’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지난 2월 열린 주총에서도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병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음에도 경영에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직’은 외면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역시 연봉 공개 대상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미등기 임원’이어서다. 이서현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도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삼성 대주주 일가에서 연봉을 공개하는 인물은 이건희 회장의 맏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다.

사정이 이쯤되면서 ‘등기임원 연봉공개 제도’ 무용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 재계 시민단체 관계자는 “등기이사가 되면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데다 연봉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오너 경영인들이 이를 피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진정한 책임경영이 아니다. 그룹 경영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한은 고스란히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삼성가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대외행보를 펼치고, 또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정작 등기이사는 거절하는 이중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책임경영을 스스로 후퇴시키는 것으로, 이 같은 무책임한 모습은 결국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어서도 대외적인 명분이나 공감을 얻기에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배경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월 등기·미등기와 관계없이 보수 총액 기준 상위 5명에 해당하면 보수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금융투자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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