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편지에 IMF, OECD, 세계은행 등 신자유주의 체제의 버팀목이었던 국제기구들이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지목하면서, ‘정부가 나서서 부유층의 세 부담을 늘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는 말을 했었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에서는 대기업들이 통상임금이나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노력이 미진해서 그런지 재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네. 정부와 재계는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으로의 전환은커녕 오히려 소득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을 바꾸려고 획책하고 있네. 아직도 그들은 대기업의 이익이 많아지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에게도 돈이 흘러들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과 소비가 늘어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정부의 도움으로 많은 이익을 내면서도 투자는 하지 않고 있네. 2014년 말 현재 10대 그룹 소속 96개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503조9000억 원으로 2013년보다 37조6300억 원이 늘어났다고 하는군. 사내유보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사내유보율이 1327.1%라네. 자본금보다 13배가 넘은 돈이 대기업의 곳간에 쌓여 있다는 뜻이지. 대기업들은 경기가 좋지 않고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정부에게 더 과감한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네. 이런 대기업들에게 정부가 법인세율을 인하하거나 각종 세액 공제 등을 통해 계속 혜택을 주고 있는 이유가 뭘까? 아직도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투자나 고용확대를 할 것으로 믿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정부와 재계가 서로 짜고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구먼.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노동자들의 임금도 늘어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 아닌가?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도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네. 한 예를 들면,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3년 동안 국내총생산(GDP)과 노동생산성은 해마다 각각 3.2%, 3.0%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연평균 1.3%밖에 오르지 않았다네. 이러니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고, 영세자영업자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은 최악의 수준으로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는 거지. ‘워킹푸어(working poor)’라는 이상한 말도 생기고. 일을 하는데 왜 가난하지?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지만 그래도 한 번뿐인 삶인데 빚을 내서라도 살 수밖에. 2015년 3월말 기준으로 국민 신한 등 7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323조 4876억 원이네. 지난해 말 316조 4539억 원에서 7조 745억 원이 늘어난 거야. 3개월 사이에 7조원이나 늘어난 거지. 주책규제완화와 금리인하 같은 정부 정책들로 인해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네. 그 결과 총 가계부채가 1100조를 넘어섰다고 하더군. 10대 재벌 그룹의 금고에는 500조가 넘는 돈이 쌓여 있는데 대다수 국민들은 빛을 내서 살고 있다니 뭐가 잘못된 것 아닌가? 설마 재벌들의 사내유보금이 가계부채 대출금으로 쓰이지는 않겠지?

많은 경제 지표와 통계들이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정부와 재계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규직을 쉽게 해고하는 방안을 만들려고 밀어붙이고 있네.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유가 정규직들이 일자리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러니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서는 해고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우리나라가 그렇게 해고 장벽이 높은 나라일까? 

OECD가 2013년 발표한 회원국들의 ‘해고 보호지수’를 보면,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는 2.17로 전체 34개 회원국 평균인 2.29보다 낮아 22위로 조사되었네. 미국이 1.18로 가장 낮았고, 독일은 2.98로 가장 높았네. 정부가 노동시장의 개혁 모델로 제시하는 ‘하르츠 개혁’이 어느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인지 아는가? OECD에서 정규직을 해고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조사된 독일일세.  

게다가 역대 정부들이 실시한 각종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정책들로 인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지 아는가?  블룸버그통신이 2014년 1월에 발표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13위에 올랐었네. 157국을 대상으로 경제통합도와 기업창업비용, 인건비와 자재비, 물류비, 무형비용, 내수시장 건전성 등 6개 항목을 평가해서 순위를 매긴 거지. 2012년에는 29위, 2013년에는 21위였으니 해마다 8단계씩 상승한 거지. 게다가 지난해 10월 29일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15)’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189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았네. 싱가포르, 뉴질랜드, 홍콩, 덴마크에 이어 5위를 차지한 거지. 감격스럽지 않는가? 계절은 분명 봄인데 마음은 아직 겨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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