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락한 재벌 총수들 현재의 삶은 다양하다. 재기를 꿈꾸는가 하면,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간다. 몇몇은 부활의 꿈은 허공에 흩뿌린 채 돌아서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대에서 특강을 진행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모습.
[시사위크=최학진 기자]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말이 있다. 부자는 망해도 그러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의 몰락한 재벌 총수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부활을 꿈꾸다 타향에서 숨을 거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재기를 꿈꾸는 이도 있다. 옛일은 옛일로 치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이도 있다.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한때 잘 나갔던 회장님들의 현재를 간략히 들여다봤다.

◇ 허공에 뿌린 부활의 꿈-장진호·신명수 회장

지난 3일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보도가 날아들었다. 장 전 회장은 1988년 36세의 나이로 제2대 회장에 취임해 사세 확장을 이끌었다. 진로는 희석식 ‘두꺼비 소주’로 197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며, 소주시장 1위를 내달렸다.

하지만 유통·건설·제약·식품·맥주 등 분야를 가리지 않은 사세확장이 장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장 회장은 수천억원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재기를 꿈꾸며 해외에서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지만, 성과 없이 외국에서의 유랑 생활을 쓸쓸히 마감했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도 부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난해 8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해표식용유로 유명했던 신동방그룹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을 맺으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게 되레 신 전 회장에게는 악재였다.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창구’로 지목되며 갖은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신동방그룹은 1997년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 실패와 IMF 체제로 1조원 가까운 부채를 떠안았다. 결국 1999년 공중분해됐다. 신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은 지 11년 만이었다. 그는 이후 하이리빙 경영에 관여하며 부활을 꿈꿨지만, 과거의 화려함은 그저 과거일 뿐이었다.

▲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최순영·최원석 회장

이들과 달리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전직 회장님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할렐루야 교회 원로장로를 맡아 다양한 종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 회장은 1976년 경영권을 물려 받았다. 63빌딩, 대한생명으로 대표되는 신동아그룹의 몰락은 최 회장의 금융권 대출에서 비롯됐다. 수출금융 등의 명목으로 1억8,500여만 달러를 대출받아 편취하고 1억6,500여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후 공적자금 투입으로 최 회장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 2006년 법원은 그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574억원을 확정 판결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학교법인 공산학원(동아방송예대·동아마이스터고)의 이사장으로 교육분야에 올인하고 있다. 잘 나가던 동아그룹의 몰락은 그룹의 주력인 동아건설의 부실에서 비롯됐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조원 규모의 경기 김포매립지 개발 투자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동아그룹은 1998년 국내 최초로 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최종 확정돼 그룹이 와해됐다.

◇ 대외 활동 유무-김석원·박건배, 김우중 회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과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은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김 전 회장은 자동차 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김 회장은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마무리해 경영실패를 감내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박 전 회장은 아들 재범 씨가 운영하는 와인업체에 가끔 모습을 보인다는 풍문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대외 활동은 사뭇 활발하다. 대우그룹은 1998년 재계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과도한 외부차입은 IMF와 맞물려 자금난으로 내몰았다. 결국 1999년 구조조정을 거치며 그룹이 해체됐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로 징역 8년 6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대통령 특사로 사면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자서전 발간을 계기로 대우그룹의 옛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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