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총수 일가의 책임경영을 꾀하기 위한 연봉공개제도가 유명무실하다. 이들은 미등기이사직으로 옮겨 실질적인 영향력은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훨씬 가벼워졌다. 사진은 그룹 총수 일가 대부분이 미등기이사인 서울 서초구의 삼성전자 사옥.
[시사위크=최학진 기자] 그룹 총수 일가의 책임경영을 꾀하기 위한 연봉공개제도가 유명무실하다. 이들은 미등기이사직으로 옮겨 실질적인 영향력은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훨씬 가벼워졌다. 국내 239개 주요그룹 가운데 37개 그룹 총수 일가가 해당한다. 또 총수를 비롯한 임원의 보수는 총수 맘대로 결정하는 ‘고무줄’이다. 

◇ 미등기임원으로 경영 장악, 책임에선 자유 

지난달 말일 신종균 삼성전자 IM(IT모바일)부문 사장에게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그가 기업 총수들을 제치고 ‘연봉킹’이라는 이유에서다. 그의 지난해 연봉은 무려 145억7,000만원이었다. 국내 최고 갑부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기업 최고경영자의 연봉 공개가 결정된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이른바 ‘자본시장법’이 2013년 개정되면부터다. 개정안에 따라 5억원 이상을 받는 등기이사의 개인별 보수와 구체적인 산정 기준·방법을 전년도 사업보고서에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당시 미등기임원의 연봉 공개가 논란이 됐지만, 결국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 

보수는 근로·퇴직·기타소득을 아우른다. 신종균 사장이 1위를 차지한 것은 근로소득 분야다. 실제 모든 소득을 합한 1위는 현대제철 퇴직금(108억2,000만원)을 받은 정몽구 회장으로 모두 215억7,000만원을 수령했다.

보수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주요 그룹 총수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다. 삼성가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이 모두 미등기 임원으로 연봉 공개 대상이 아니다.

큰 그룹의 사정이 이러한데 규모가 작은 기업은 어떨까.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239개 주요그룹 가운데 37개 그룹 총수 일가가 보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등기임원 연봉 공개가 의무화되면서부터 지난해까지 11개 그룹의 총수 일가 구성원이 등기임원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해당 일가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 최신원 SKC 회장 등이다.

▲ 총수 일가를 비롯한 임원의 보수 산정 기준도 애매해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 바지 사장 연봉 공개로 이미지 훼손 없음

문제는 이들 기업 총수들이 미등기이사로 자리를 옮겨도 경영에 대한 위치나 비중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이에 비해 경영 책임에선 보다 더 자유로워진다. 미등기이사는 등기이사와 달리 회사경영과 관련해 위법사실이 명확히 입증돼야 법적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의 취지인 책임·투명경영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연봉공개 제도가 오히려 국내 기업의 책임경영 문화를 후퇴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총수 일가 대신 바지 사장의 연봉을 공개해 일가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효과는 덤이다.

총수 일가를 비롯한 임원의 보수 산정 기준도 애매하다. 직원의 보수는 총수나 사장이 책정한다지만, 임원의 보수는 누가 정할까. 자본시장법은 보수 산정 기준을 회사 자율에 맡긴다. 다만 상법 제388조에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할 때에는 주주총회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원의 보수 인상은 공식의결기구인 주주총회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업 대부분의 주주총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 이 때문에 총수나 임원의 보수는 ‘내’ 맘대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연봉 공개 의무 대상자에서 빠져나오려는 총수 일가가 늘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이유로 등기여부에 상관없는 보수 공개와 명확한 보수 산정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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