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9 10:32
[최진 대통령학] 대통령의 사진 한 장
[최진 대통령학] 대통령의 사진 한 장
  • 시사위크
  • 승인 2015.04.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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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전 시사저널 정치팀 팀장,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 전 청와대 정책비서실 국장
[시사위크]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화려한 은빛 드레스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주 다정다감한 미소를 띤 채 총애하는 참모의 보고를 받는 모습이 유력 일간지 1면에 보도되었다. 그것도 아주 큼지막한 칼라사진으로! 대통령과 참모가 이마를 맞댄 채 뭔가를 주고받는 모습은 보기 좋다.

문제는 보도시점이다. 이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때는 지난 22일 수요일, 이완구 총리가 낙마한 바로 다음날이다. 더욱 불편한 대목은 사진설명은 ‘페루 리마를 방문 중인 대통령’이라고 해놓고, 바로 위에 크게 뽑은 제목은 ‘4번째 총리 낙마……. 늪에 빠진 국정’이다. 사진 바로 아래에는 ‘초유의 리더십 공백, 대통령 사과필요’라는 무시무시한 제목들이 깔렸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은 ‘성완종 리스트’로 난리가 났고 급기야 국무총리까지 낙마했는데, 정작 대통령은 해외에서 유유자적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사진이었다. 아니 ‘오해’가 아니라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감성시대인 오늘날 실제 상황보다 작은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더구나 사진속의 참모가 누구인가? 올 연초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됐던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언론의 사진 연출이었다고 해도 청와대는 대통령의 사진 한 장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불난 집, 상가 집 옆에서 집주인이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답게 웃는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집주인이 100번 울다가 한번 웃어도 괜한 오해를 받게 된다.

2주전에도 결코 아름답지 못한(?)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지난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했다는 내용이 다음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성완종 자살’이라고 큼지막하게 뽑은 제목 옆에 활짝 웃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실렸다. 어느 공식행사장에 참석했던 대통령의 사진이 다음날 우연히 함께 보도된 것 같다.

하지만, ‘죽은 기업인’과 ‘밝게 웃는 대통령’의 보도를 함께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속은 어떨까?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국민들의 무의식속에는 ‘불편한 생각’이 스쳐지나가지 않겠는가?

21세기 감성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청와대 사람들은 그런 감성의 원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거창한 정책이나 공식발표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예컨대 ‘진돗개 발언’이나 ‘단두대 발언’같은 일침이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감성시대의 특징이다.

지난 21일자 언론을 쭉 훑어보라. 총리공관에서 파자마 비슷한 옷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이완구 총리, 총리 대신 의사봉을 두드리는 최경환 부총리, 아주 침통한 모습으로 승용차에 오르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검찰소환이 예상되는 홍준표 경남지사, 그리고 검찰에 출두하는 성완종 전 회장의 최측근….

한결같이 불길한 징조의 사진들이다. 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신문을 보았다면, 웃음이 쏙 들어갔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임기 3년이나 남겨놓은 정권의 모습인가? 레임덕의 동굴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형상은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사진은 별 두 개 달린 군대모자를 쓰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깡마른 얼굴이다. 그랬던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에 주력하면서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는 서민대통령의 사진으로 각인되어 있다. 육영수 여사가 코흘리개 어린이를 안아주는 흑백사진 한 장은 아직도 사진기자들 사이에 ‘국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아버지, 어머니를 닮은 탓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지 정치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미소, 패션, 절제된 언행이 돋보인다. 특히 그의 부드러운 미소 사진은 딱딱한 남성정치에 대한 식상함을 상쇄시켜준다. 그랬던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왜, 이미지정치와는 동떨어진 사진을 보여주는지 알 수 없다. 때와 장소가 어긋난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은 국민들의 무의식속에서 반감과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않는가?

하필이면 세월호사건 1주기인 지난 16일에 해외 순방길에 오른 대통령의 사진도 마뜩치 않았는데, 순방 중에 총리가 낙마하고 청와대의 전현직 비서실장이 몽땅 성완종 리스트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에 나가있는 대통령이 문고리 3인방으로 비판받았던 참모와 웃고 있는 사진. 여전히 극소수 참모에 의존하고,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는 불통 대통령으로 오인될 수 있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27일 귀국하고, 이틀 후인 29일에는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5월에도 성완종 사건은 주인 없는 기관차처럼, 폭풍처럼 앞으로 내달리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부지불식간에 대통령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를 살피게 될 것이다.

다음 총리는?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고뇌에 찬 결단을 할까, 아니면 또다시 안이한 결단을 하게 될까? 멀리 남미에서 날아오는 대통령의 사진을 보면서 국민들의 마음은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감성시대, 특히 요즘처럼 분노의 사회에서는 거창하고 딱딱한 국정홍보, 정책홍보보다 조그맣고 부드러운 감성홍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사진 한 장, 진정성이 있는 사진, 행동으로 연결되는 사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