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4·29 재보선에서 광주 민심은 천정배 의원을 오롯이 택했다.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주었고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도록 새신을 신겨 주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머리가 하늘까지 닿도록 폴짝 팔딱 뛰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새신이 헐렁했던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지 헛발질을 계속해댄다. 그 새신은 구태로 대변되는 동교동계로 훌쩍 날라 가 버렸고, 천 의원은 그 걸 줍기 위해 이희호 여사를 방문했다.

◇ 천정배 동교동 방문 구태정치 행보 눈살

거기서 천 의원은 “DJ를 정쟁거리로 이용하지 말라, 호남 신당 만드는 거 시기상조다”라는 따끔한 훈수를 듣고 그대로 물러나고 만다. 자신의 정치철학인 ‘호남정치 이대로는 안된다’고 우선 동교동부터 살신성인의 자세로 변화와 개혁의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 한마디 못한 채 말이다.

천 의원의 당당함도, 소신도 없는 행보를 본 광주시민들은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광주시민만을 바라보고 간다면 모든 게 풀릴 텐 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진 동교동을 느닷없이 방문한 목적과 배경에 모두 의아해 했다.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뛰쳐나온 천·신·정 가운데 한 사람인 천정배 의원이 안산에서 내리 4선을 지낸 뒤 친노세력에게 ‘팽’ 당해 서울로, 송파로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다 보니 보금자리가 아쉬워 그랬을까.

아니면 선거과정에서 DJ와 찍은 사진을 현수막으로 내걸어 당선을 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고 당선사례를 하러 갔을까.  

아무래도 천 의원의 동교동 방문은 본전도 못 찾고 구태정치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내 여론은 그리 달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호남정치는 포스트 DJ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다보니 지금은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져 이제 재목감으로 쓸 만한 젊은 인재들마저 없는 상태다. 맨날 선거 때만 되면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표를 구걸하는 야당에게 묻지 마 투표를 한 뒤 ‘전략적 선택을 잘했다’ ‘광주정신을 보여준 결과’라고 치켜세우는 말 몇 마디에 자위를 해왔던 게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노무현 전 대선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 때 광주는 95%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건 ‘노무현이가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이가 싫어서 찍었지’라고 했다.

노무현 정신을 온몸으로 계승한 적통이라고 자부한 문재인도 2012년 대선 때 92%의 표를 몰아줬지만 떨어졌다. 광주시민들은 호남민의 씨가 마를 정도로 철저하게 호남을 역차별한 문재인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를 보냈었다. 그러나 떨어져서 죄송하단 말 한마디가 없었다.

이번 천 의원이 당선된 배경에는 명색이 대권을 바라보는 야당대표라는 사람이 지원유세차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한 몫 했다. 오죽 했으면 광주시당에서 문 대표가 그만 내려와야 보탬이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까 싶다.

호남사람들은 그동안 야당에게 맹목적 지지를 보냈지만 늘 소외됐고 인사와 예산 측면에서 차별을 받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탄생시켜 주었더니 되레 역차별을 당했다. 그 결과 현재 중앙정부 부처에는 쓸 만한 이 지역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위 공직자뿐이랴.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이후 10여년 동안 거의 친노세력들이 좌지우지 해왔다. 당 지도부나 비상대책위가 꾸려질 때마다 그 중심에 늘상 친노가 포진했고 그들은 개혁공천이라는 미명아래 호남출신 3선 이상 의원들이 클 만하면 제거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호남에는 원로라고 불릴 정도의 마땅한 정치인이 없다. 그렇다고 현재 금배지를 차고 있는 의원들 가운데서도 경쟁력이 있거나 잠룡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권주자도 없다. 문재인 이건, 안철수 건, 박원순이건, 김두관이건, 야당 내 다른 대권주자건, 여당의 김무성이건 모두가 영남출신들이다.

자업자득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젊은 인재를 키우지 못했던 점이 마침내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은 공천 잘못에서 비롯됐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니 당 지도부가 주는 공천권만 바라보면 됐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호남지역 의원들은 친노 계열의 당 지도부가 대표 경선에 나서기라도 한다면 호남 표를 갖다 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곤 그 대가로 공천장 받으러 줄을 서곤 했다.

더욱 얄미운 것은 그들은 호남민들에겐 주인 행세를 하며 갑질을 해댔다. 시도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민심이반은 이번 재보선에서 천정배를 고리로 마침내 나타나고 말았다.

◇ 호남신당 창당 비전제시로 시·도민 갈증 풀어라

천정배의 당선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하나는 호남을 대변할 정치세력을 갈망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호남민의 자긍심과 더불어 먹고 사는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의 텃밭인 호남을 번질나게 드나들면서 말 뿐이었지 아무런 자양분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새정치연합에 대한 짝사랑은 이번 선거를 통해 끝이 났고, 더 이상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민심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새정치연합의 대안세력으로 전국정당을 표방하는 호남중심의 신당 창당이 불가피해졌고 그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물론 신당 창당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광주·전남과 수도권 호남민들을 흡입력 있게 끌어 모아 전국정당을 만든 뒤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면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호남만을 중심으로 갈 경우 지역정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명분도 없다. 깃대를 먼저 꽂고 여기로 모이자고 할 만한 주체세력도 없다. 공당을 움직일 재원은 누가 댈 것인가. 무엇보다 호남중심의 신당창당은 지역통합에 역행하는 행위다.

아이러니하게도 친노세력들은 신당창당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흐름을 즐기고 있다. 아무리 비노들이 용을 쓰고 새정치연합을 뛰쳐나간다고 떠들지만 여기에 합류할 용기 있는 호남출신 의원들은 거의 없다고 예단한다. 입으로만 떠들 뿐이지 큰 사안이 터질 때마다 응집력 있게 뭉친 걸 한번이나 본적이 있느냐고 되레 반문할 정도다.

기껏해야 내년 총선에서 문 재인으로 부터 당 공천을 받지 못할 게 뻔 한 의원 몇 사람만 떠들고 있는 게 호남정치 복원이냐고 얕잡아 볼 정도다. 떠들다 제풀에 지쳐 그만두면 두지 행동으로 옮길 의원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지난해 지방선거 때 시민들의 선택권을 빼앗아 윤장현 광주시장을 공천할 때 독수리 5형제들이 뭉친 것을 단합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겠다.

어쩌다 호남지역 의원들이 이렇게 변방으로 전락했는지 한숨마저 터져 나온다. 그러다보니 호남지역 의원들은 거의 20여 년 동안 대권주자는 물론이고 국회부의장이나 제대로 된 경선을 통한 원내대표 한번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겉절이에 불과한 새정치연합을 더 이상 믿기 어렵고, 기대도 할 수 없다보니 이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신당의 출현을 바라고 있는 게 호남민들의 솔직한 바람이다.

호남신당의 주인은 천정배도, 지역 국회의원도, 과거 정치인 출신 명망가도 아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호남민들이나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광주·전남·북 출신 모두가 주체세력이다. 재원이 없다면 과거 IMF 시절 국가경제가 거덜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금모으기에 나섰을 때 가장 앞장섰던 것처럼 호남의 정신으로 꾸려나가면 된다.

이건 이러니깐 안 되고 저건 저러니깐 안 된다는 매너리즘에 빠지다 보면 아무것도 이룰 게 없다. 이제 호남민들은 이래도 당하고 저래도 당하고, 먹을 파이가 없어 서로 아귀다툼하는 현실을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시대적 소명 앞에서 호남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책임을 묻는다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 언론 등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제 이순신 장군의 말씀대로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다)’라는 의병정신으로 신당 창당을 통해 호남사람들이 갈 길을 걸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체성과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주 내지는 평화라는 그럴싸한 당명도 좋지만 ‘호남신당’ 그대로 속살을 내비치는 당명이면 어떠냐. 여기로 쏟아지는 모든 비난과 여론쯤은 감수해봄직도 하다. 이 눈치, 저 눈치는 왜 보느냐.

힘이 부치면 서로 부둥켜안고 어깨동무로 나아가면 되는 게 아닌가. 그게 호남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되고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먹거리 판을 깔아주는 길이라면 아무렴 어떠랴. 스스로 호남정당의 길을 가자고 서로가 격려한다면 안 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따라서 천정배는 시·도민들이 신겨준 신발을 신고 호남신당 창당을 위해 폴짝 폴딱 뛰어주길 바란다. 동교동에 갈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호남민들의 갈증이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비전과 메시지를 폴짝 던져라. 천정배가 사는 길은 그 길 뿐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