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방북 취재를 위해 평양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맞닥트리는 문제는 언어장벽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인데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적지 않은 일상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질화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문화적 이질감이나 체제의 차이에서 오는 소통장애도 만만치 않다.

남북한이 낙지와 오징어를 뒤바꿔 쓰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오징어로 부르는 걸 북한은 낙지로 부른다. 평양 고려호텔 식당 메뉴판을 보고 ‘낙지볶음’을 주문했다면 오징어 볶음이 나온다는 얘기다. 여종업원에게 “낙지볶음을 시켰는데 왜 오징어 볶음을 가져 오냐”고 따진다면 한바탕 입씨름을 겪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잘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 달라졌거나 뒤바뀐 단어나 표현이 적지 않다.

방북길에 북한 안내원이 “무리등이나 살결물이 무슨 뜻인지 인차 요해가 안되십네까”라고 말을 건넨다면 무슨 의미인지 언뜻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남한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리등은 우리말로 샹들리에를, 살결물은 화장품인 스킨로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차는 금방이란 뜻이고 요해는 이해의 북한식 표현이다.

이처럼 분단 70년을 거치며 남북 간 언어차이가 심화됐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자칫 남북한을 한민족으로 묶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 언어문화마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한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드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언어차이(33.3%)였다는 답이 나왔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72%가 언어문제로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44.8%는 정착 초기에 남한주민의 말을 ‘다소’ 또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생소한 단어(33.9%), 발음과 억양(27.4%), 의미차이(19.6%) 등을 들었다.

몇 년 전 국립국어연구원이 한국어문진흥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북한주민이 모르는 남한 외래어’조사 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뉴스․다이아몬드․모델․뮤지컬․미니스커트․콘돔 등 남한사람들이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외래어들이 북한 주민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나타났다.

또 발레(바레, 이하 괄호 안은 북한식 외래어 표기)․마라톤(마라손)․러시아(로씨야)․베트남(윁남)․카이로(까이라)․베이컨(베콘)․멕시코(메히꼬)․마이신(미찐)․레일(레루)․달러(딸라) 등 남북 간의 표기가 크게 다른 사례도 많았다. 조사결과 남한에서 흔히 통용되지만 북한주민들이 모르는 단어는 8,284개나 됐다.

남북 이산상봉 현장에서도 언어차이로 인한 문제가 나타났다. 남한의 아들이 북녘의 어머니께 "어머니 그동안 어찌 지내셨어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나는 일없다. 너는 어떻게 살았니?”라고 답했다. 아들은 내심 ‘일없다니, 어머니가 화나셨나?’라고 당황해 했지만 어머니의 속마음은 달랐다. 북한에서는 ‘일없다’는 말은 ‘괜찮다’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남한에서는 좋지 않은 감정에서 거절하는 듯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 북한 체신성이 2000년 발행한 우표. 오징어를 '낙지'로 표기해놓은 게 눈길을 끈다.
일상용어도 차이가 확연하다. 방조하다(도와주다)․찬물미역(냉수욕)․인민소비품(생활필수품)․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볶음머리(파마머리)․다리매(각선미)․가두녀성(가정주부)․단고기(개고기)․땅고집(옹고집) 등이 대표적이다. 또 군중가요(대중가요)․주석단(귀빈석)․위생실(화장실)․찬단물(냉주스)․수표(서명)․수원(수행원)․관람예견(관람예정)․모터찌클(모터사이클)․남새(채소) 등도 남측엔 생소한 어휘로 꼽힌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남북한이 이처럼 깊은 골이 패인 것은 서로 다른 체제 속에 다른 어문정책을 펴온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일찍이 언어를 사상교양의 수단으로, ‘혁명과 건설의 중요한  무기’로 규정하고 주민들의 언어생활을 조절․통제해왔다. 북한은 1966년 5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과거부터 우리나라 표준말로 돼있는 서울말 대신 평양말을 중심으로 ‘문화어’를 만들고 사용토록 했다. 서울말에 부르주아․복고주의 요소가 있어 봉건․유교사상 등 반동적 사상과 생활양식에 젖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북한의 언어가 달라진 결정적인 계기는 북한이 54년 제정한 ‘조선어 철자법’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기존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적지 않은 수정을 가했다. 즉 전통적인 24자모에 ㄲ ㄸ ㅃ ㅆ ㅉ 등 된소리 5자와 ㅐ ㅔ ㅚ ㅘ ㅝ 등 총 16자를 추가해 40자모로 만들었으며 두음법칙을 부정해 ‘내일’을 ‘래일’, ‘여성’을  ‘녀성’으로 표기토록 했다. 자모순차도 ‘ㅇ’을 ‘ㅅ’다음이 아닌 맨 마지막에 놓았고 ‘었’을 ‘였’, ‘깃발’'을 ‘기발’ 식으로 일부 단어철자법도 고쳤다.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일부 외래어에 대해서도 ‘탱크’를 ‘땅크’, ‘캠페인’을 ‘깜빠니아’ 등 러시아․일본식으로 표기했다.

물론 북한당국의 언어정책에도 긍정적 측면이 발견된다. 고유한 우리말을  살리고 이를 생활화한 점이다.

남북한에서 기념하는 한글날의 날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남북 간 언어이질화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엿보게 한다. 남한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세종 28년 음력 9월 상순(1446년 10월 9일)을 계기로 해 한글날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한글 창제일인 세종 25년 음력 12월(1444년 1월15일)을 기념하고 있다.

남북 간의 언어이질화가 초래한 많은 문제점과 관련해 무엇보다 정보화 시대와 통일에 대비한 통합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판의 체계까지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통일 준비사업의 핵심 중 하나로 자판통일 같은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일 이후에도 서로 다른 언어와 핸드폰. 컴퓨터 자판 입력시스템 때문에 큰 혼란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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