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18일 서울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에 방문에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케리 장관은 '사드'를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방한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의 메시지가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SLBM 발사 후 도발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다시 사드가 거론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정세는 격랑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사드 배치 논의를 재점화 시킨 것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직접적인 발언이었다. 지난 18일 케리 장관은 방한의 마지막 일정인 용산 주한미군 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사드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케리 장관의 ‘사드’ 발언 두고 해석 분분

캐리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기존 사드배치와 관련해 정부의 ‘3NO’ 기조가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사드 배치 논의를 공론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차례 있었지만, 정부는 “미국의 요청이 없었기에 협의도 없고, 결정도 없다”는 3NO로 일관해왔다.

정치권도 캐리 장관의 발언에 들끊었다. 유승민 원내대표 등 사드배치 찬성론자들은 “미 국무부, 국방부, 주한미군의 핵심 인사들이 사드 등 미사일 방어를 언급하고 우리 정부는 계속 3NO를 말하는 상황은 한미동맹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며 “6월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찬성론에 불을 지폈다.

반면 사드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인 야당은 “한미 간에 어떤 논의가 오고 갔는지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며 공론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언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정부가 고수했던 3NO 입장이 사실상 무너진 것으로 사드배치를 공식화시키는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외교부는 “사드 배치 문제는 장관급 회담에서도 논의가 없었고, (케리 장관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나온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도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사드 문제와 관련) 진전된 내용이 있으면 당연히 언론을 통해 공개할 것”이라며 “캐리 장관의 발언은 북한 위협의 심각성을 언급하고 한반도 내 평화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고 진화에 나섰다.

▲ 지난 3월 22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만평. 한국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힘 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다. 한국의 현 상황을 미국의 시각에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한미연합사령관 “미래 어느 시점, 한미 양국 정부 함께 하게 될 것”

정부당국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이번 논란의 심각성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외교문제를 총괄하는 캐리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사드 문제를 언급한 것이 처음이고, 무엇보다 당사국인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캐리 장관의 이번 방한은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예방외교적 성격으로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역시 유심히 추이를 지켜보던 터였다.

한미관계에 정통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캐리 장관이 방한 마지막 일정에서 ‘사드’ 문제를 툭 던져놓고 귀국했다. 우리 뿐 아니라 북·중·일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며 “고도로 계산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고, 사실상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하부 의제로라도 다루고 싶다는 의사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

한편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다시 거론되면서 동아시아 외교관계가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사드 문제에 한해 3NO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다분히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한 것이 크다. 앞서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나서 한반도의 사드배치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공식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양국이 군사적 요인 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응도 고려하고 있다”며 “미래의 어떤 지점에서는 한미 양국 정부가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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