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오랜만이군. 자네에게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 게 벌써 달포 정도 지난 것 같네. 5월에 사진 전시회를 끝내고 전국 방방곡곡 유람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네. 6월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이제, 작년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나라 안팎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높여 놓고 진정되는 것처럼 보이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꼭 한 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걸세. 오늘은 지난 한 달 동안 나라밖에서 들려온 가장 반가운 소식과 나라 안에서 있었던 시대착오적인 권력 다툼을 ‘배신’이라는 단어로 묶어 이야기해보고 싶네.

지난 6월 26일에 미국 연방 대법원이 “결혼의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므로, 정부는 동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막을 권리가 없다”면서 동성혼을 인정했다는 소식은 들었지? 이로서 미국은 세계에서 동성혼을 인정하는 스무 번째 국가가 되었네. 미국이 첫 번째 국가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야단이냐고?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가장 혐오하는 사람들이 누군가? 근본주의적인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천국’으로 생각하는 나라 미국이 동성애를 넘어 동성혼까지 인정했으니 그들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보수적인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 임명한 대법관이 5명으로 다수인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어떻게 이런 판결이 가능했을까 궁금하지 않나? 먼저 미국의 위헌 심판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면, 미국은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가 하는 일을 9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이 하고 있네. 하지만 미국의 연방 대법관들은 우리와는 달리 사망이나 질병 등으로 스스로 사임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킬 수 있지. 그들은 오직 하원의 탄핵소추와 상원의 탄핵의결로만 파면할 수 있어. 그래서 지금 연방대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대법관 9명 가운데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5명이야.

이번 동성혼 인정 판결도 연방 대법관들의 이념적 지향 분포로 보면 불가능했지. 하지만 미국의 대법관들은 우리처럼 무조건 ‘진영논리’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네. 자신의 소신을 중시하는 개별적인 인격체들이지. 이번에 ‘진보 대법관’들의 편에 서서 5대 4의 판결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었네. 그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가 1975년에 제9연방순회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작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1988년에 대법관으로 임명했던 사람이야. 보수성이 강한 그가 이번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을 직접 썼다고 하더군.

보수적인 대법관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이른바 ‘스윙보트 swing vote’ 역할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 2012년 6월에 있었던 의료보험 개혁법(이른바 오바마케어)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그런 역할을 했었네. 이번에 동성혼에 찬성했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그때 다른 보수 대법관들과 함께 위헌이라고 주장했었지. 존 로버트 대법관도 2005년에 공화당 출신인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던 사람일세.

만약 한국의 헌법재판관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나 정당의 이념이나 가치에 반하는 의견을 개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믿는 재판관이 동성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다면 그가 속한 종교단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우리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지적수준을 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 기독교 우파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거나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높네.

친구야. 내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비판했던 32 번째 편지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먼저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이 ‘우리보다 체제 비판에 더 자유롭고,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가 된 게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나? 자유주의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타고난 ‘이기심’과 ‘정보와 사고능력의 부족’ 등으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법이나 제도’로 권력을 상호 견제하고 통제하는 삼권분립도 필요하고, 비판의 자유와 관용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

어디에서든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하는 권력자는 이미 자유주의 가치와 정신을 ‘배신’한 거야. 그런 ‘불통’의 권력자를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비판하지 않으면 그는 필연적으로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네. 정치 후진국의 독재자들이 자주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건 자유주의에 대한 무지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독재를 숨기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말게나. 40여 년 전에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를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다시 하고 있으니… 서글퍼지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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