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전 시사저널 정치팀 팀장,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 전 청와대 정책비서실 국장
[시사위크] 꽤 오래전에 ‘5인의 자객’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저마다 성향도 다르고 무기도 다른 5명의 자객들은 자기네들끼리 경쟁하지만, 공동의 적을 향해서는 힘을 모으기도 한다. 이들을 검객이 아니라 굳이 자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칼을 감추고 있거나 언제 칼을 휘두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객은 백주대로에서 맞장을 뜨지만 자객은 어둠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인다.

요즘 여의도에 ‘5인의 자객’이 있다. 검객 1은 큰 칼을 지닌 김무성 대표이다. 그는 입가에 늘 미소를 짓지만 뱃속에 큰 칼을 품고 다니기 때문에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고도 한다. 김 대표는 최근에 고개를 3번 숙였다. 방미 중에 6.25 참전용사들 앞에서, 엘링턴 국립묘지에서 큰 절을 올렸고, 얼마 전 유승민 파동 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 칼을 감추고 훗날을 염두에 둔 원모심려의 절이었다.

김 대표는 방미 중에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존 케리 국무장관과 같은 백악관 최상층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미국 조야를 누비는 대권 주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김 대표는 유승민 파동을 계기로 ‘무성 대장’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내년 4월 총선 때까지는 칼을 꼭꼭 숨겨놓을 것 같다. 가끔 칼이 배 밖으로 툭툭 튀어나오려고 하겠지만.

검객 2는 긴 창을 잘 쓰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이다. 셀프디스를 통해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한 문 대표는 고용된 칼잡이라는 의심을 받는 김상곤 혁신위원회위원장을 통해 당내 혁신을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의원수 369명안(案)을 내놓아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정국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문 대표의 운명은 고용된 칼잡이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쁜 표창을 잘 쓰는 검객 3은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이다. 메르스 사태 때 표창 하나를 날렸다가 빗나가 망신만 당했던 안 의원은 국정원 해킹의혹 사건을 맞아 연일 날카로운 표창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방패가 워낙 견고해서 표창이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어서 고민이다. 안 의원은 과거와 달리 제법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힘만 쓰고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안 의원이 앞으로 진짜 고심해야 할 것은 ‘친노냐 비노냐’를 선택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일이다.

검객4는 사무라이처럼 긴 칼을 휘두르며 신당 창당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다. 천 의원은 대전 등 전국 순회강연을 한 뒤, 8월말에 신당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때마침 한 유명 관상가는 천 의원의 눈썹 끝이 하늘을 향한 형상이라며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승부욕이 강한 무사형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노무현 후보를 맨 처음 지지할 때도 단기필마로 질주하는 무사를 연상케 했다. 천 의원 주변에는 만만찮은 검객들이 즐비하다. 정대철, 박주선, 박준영, 김민석 등 기라성 같은 자객들이 세력확장 경쟁을 벌리고 있다. 7월말 포항지역 새정치연합 당원 100여명이 집단 탈당한데 이어 8월 말에는 대구경북에 이어 부산경남 지역 당원 100여명이 집단 탈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신당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지만, 앞으로 태동할 신당의 헤게모니를 잡기위해 자기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명분과 대중적 인지도 측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천 의원은 말을 타고 다그닥다그닥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자객 5는 밤마다 남몰래 칼을 쓱싹쓱싹 갈고 닦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에 의해 원내대표직을 사실상 박탈당한 유 전 대표는 마치 팔 하나를 잃고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는 영화 속의 ‘돌아온 외팔이 검객’처럼 재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 7월28일에는 과거 원내대표 시절 함께 일했던 원내 부대표 10여명과 모처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조심스러운 재기의 첫발이라고 할까?

5명의 자객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상대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자객들은 서로 자웅을 겨루면서도 국정의 주도권, 내년 총선, 2017년 대선 등 갖가지 명분을 동원해 박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누구인가? 고수 중의 고수가 아닌가? 박대통령은 무림의 고수처럼 3박4일 동안 청와대 관저에 홀로 깊이 파묻혀 여름휴가를 보내며 천하무적의 비법을 강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생전에 청와대에서 보낸 18년과 아버지 사후에 초야에서 보낸 18년을 합해 도합 36년 동안 도를 닦았다. 특히 초야 18년 동안 <손자병법><육도삼략>과 같은 중국 고전을 섭렵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무림 고수와 5명의 자객들 간에 물고물리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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