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먼저 엄재국 시인의 <옹달샘>을 읽고 우리 이야기를 시작하세.

경북 문경시 산길 깊은 내화리// 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사과나무 한 그루가 명찰을 달고 있는데요// “지나가다 목마르면/ 하나 따 드세요”// 까치밥과 사람 밥 얹어 매달아 놓은 주먹만한 물통들/ 목젖 가득 찰랑대는 물소리

“지나가다 목마르면 하나 따 드세요.” 예전에는 저런 곳이 정말 있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30~40년 전 이 땅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인심이었네. 돈 없이 길을 떠나도 얻어먹으면서 다니는 여행인 ‘무전여행(無錢旅行)이 가능한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이른바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서리’가 사라지고, 까치밥도 사라지고, ‘사람 밥’도 사라지고 말았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상품이 되면서 텃밭에서 기르는 농작물마저도 ‘돈’이 되어버렸네. 그러니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세상일세. 동시에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겐 인간성이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장으로만 보일 뿐이야. 약육강식 적자생존만이 지배하는 동물들의 세계일세.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던 ‘옹달샘’ 세상을 다시 만들 수 없을까?

지난 7월 9일 새벽에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가 불참한 가운데 2016년 최저임금을 시급 6030원으로 결정했네. 올해의 5580원에서 450원이 오른 액수야. 주 40시간 노동(주 1회 유급 주휴수당 포함)을 기준으로 월급으로 환산하면 126만 270원이네. 최저임금위원회는 2008년 8.3% 인상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8.1%)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노동계의 실망은 다른 여느 해보다 더 큰 것 같네.

언젠가 IMF, OECD, 세계은행, ILO 등의 국제기구들이 회원국 정부들에게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이니, ‘정부가 나서서 부유층의 세 부담을 늘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독려하고 있다는 말을 했었지? 그 결과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정부의 노력으로 대기업들이 통상임금이나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내년 최저임금이 다른 해보다 많이 오를 것 같은 군불을 지핀 건 정부였지. 지난봄부터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온 사람이 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였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고. 낙수효과만을 주장하던 국제기구와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최저임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니, 노동계가 요구하는 1만원까지는 아니라할지라도 최소한 두 자릿수 정도 인상될 줄 알았지. 아무리 경제계의 저항이 심해도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생활임금인 6500~7500원 정도는 될 줄 알았지.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 그러니 노동계가 정부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클 수밖에…

다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에 의회에서 했던 국정연설이 생각나는군. “소수만 유별나게 성공하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이냐, 모든 노력하는 이들의 소득 증대와 기회 확대를 창출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이냐.” 왜 우리 정치인들은 저런 말을 하지 못할까? 저임금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왜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기업인들을 설득시키려고 노력 하지 않는가? 오바마는 그때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올리자고 제안하면서, “1년 내내 일해 받는 임금 1만5000달러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디 한번 해보시오”라고 의원들을 다그치기까지 했는데 우리 지도자들은 왜 그렇게 못할까?

미국에서는 정치지도자들과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있네. 지난 7월 22일에는 뉴욕 주의 임금위원회가 패스트푸드 체인 식당 종업원들의 최저임금을 현재 8.75달러에서 2018~2021년에 15달러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네.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뉴욕시의 경우 올해 10.50달러로 오르고, 앞으로 3년 동안 매년 1.50달러씩 올라 2018년에 15달러가 된다는군. 지금보다 거의 2배가 되는 거지.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들도 이미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네. 시간당 15달러 임금을 받으면 주 40시간 노동 기준으로 연 3만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는 뜻이지. 1인당 GDP가 약 5만5000 달러(2014년 기준) 가량 되는 나라에서 그 정도는 되어야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근로빈곤층이라는 말 들어봤지?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서도 잦은 실직과 낮은 임금 때문에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라고 부르네. 일을 하면서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취직과 실직을 반복하는 임시직, 일용직 등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주요 구성원이지. 그런 워킹푸어의 양산을 막고 임금불평등을 완화하고자 실시하는 제도가 최저임금제이네. 하지만 1988년부터 시작한 우리의 최저임금제는 아직까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한 것은 사실지만,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근로자 평균임금의 32%(2013년 기준)로 OECD의 권고 수준인 50%에 크게 못 미치고 있네. 게다가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법정 최저임금인 5,210원 미만을 받고 있는 사람이 227만 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2.1%나 되네. 근로자 8명 중 1명이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는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야.

우리 복지수준이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열악한 건 누구나 다 알지. 그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200만 명이 넘는다니…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뿐일세. 다시 서두에 인용한 시구를 읊어보네. “지나가다 목마르면 하나 따 드세요.” 우리는 언제쯤 잃어버린 그런 마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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