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인지는 알고 있지? 며칠 전에 시내에 나갔더니 온 거리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고, 광화문과 명동에 있는 건물들은 수십 미터짜리 대형 태극기들로 뒤덮여 있더군.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사기를 높이기 위해 8월 14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는데 이날은 전국 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면제된다고 하더군. 쉬는 날 이야기만 나오면 ‘경제손실액 몇 조 원’이라고 반대하던 재계가 환영하고, 경제부총리가 공휴일 지정으로 ‘경제효과 1조3000억 원에 고용효과 4만6000 명 정도가 유발된다.’ 고 말했다네. 그러니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로 시작하는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광복절은 우리 모두가 ‘길이길이’ 지켜야 할 국경일임이 틀림없어.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 50여 년 동안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변화한 것은 사실일세. 광복 70주년을 맞아 통계청이 내놓은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경제대국으로 환골탈태한 나라임이 분명하네. 국내총생산(GDP)은 이용 가능한 통계자료가 있는 시점인 1953년의 477억원에서 2014년 1485조원으로 3만1000 배 이상 증가하여 세계 13위 수준이 되었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67달러에서 2만8180달러로 420배 이상 늘어났네. 1964년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은 지난해 5727억 달러로 세계 6위 수출국으로 올라섰고, 외환위기로 국민 모두가 고통을 겪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외환보유고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636억 달러가 되었다고 하는군.

자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알지? 정말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변화를 보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말이 실감이 나네. 저런 통계가 아니라도 전쟁 직후에 태어난 우리들은 배고픔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세대지. 물론 요즘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단군 이래 한반도 남쪽에서 오늘날처럼 먹을거리가 풍요로운 시대는 없었던 것 같네. 그러니 블로그를 비롯한 쇼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음식 사진이 넘치고, 이른바 ‘쿡방’과 ‘먹방’이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지.

그러면 광복 70주년을 요란하게 기념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말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5년 전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아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기적(Asia‘s Latest Miracle)’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한민국에서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자네는 해방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난 지금 65세 이상의 노년층들이야말로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만했던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네. 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일 중독자 Workaholics’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만 알고 살았던 세대들일세. 그리고 그들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속담을 믿었던 마지막 세대야. 하지만 온갖 고난 속에도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살았던 그들이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금 여기서’ 풍요롭게 살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힘들게 일만 하고 있네. 2011년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남성 39.6%, 여성 21.4%로 OECD 평균인 남성 17.4%와 여성 8.4%보다 각각 22.2%p, 13%p 높네. OECD 국가 중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우리나라야.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모두 잘 살아야 하지 않을까? 2010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3%로 OECD 국가 평균치인 13.5%보다 3.5배 이상 높고,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80.3명으로 OECD 평균 20.9명보다 약 4배가 높네.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가장 가난하게 살고, 가장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뭐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닐까?

우리나라 노인들의 대다수가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은 지난 8월 9일 현대경제연구원(HRI)이 발표한 <우피족(Woopie)과 푸피족(Poopie) -부유한 노인과 가난한 노인의 소득 격차 확대>라는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네. 여기서 우피족(Woopie, Well-off older people)이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인으로서, 중위소득 150% 이상, 65세 이상 가구주’이고, 푸피족(Poopie, Poorly-off older people)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노인으로서, 중위소득 50%미만, 65세 이상 가구주’를 뜻하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고령층 371만 가구 중 54.0%인 200만 가구가 푸피족이고, 우피족은 6.2%인 23만 가구뿐이야. 절반 이상의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는 뜻이지. 게다가 가난한 노인들의 시장소득은 근래에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네. 2006년과 2014년 사이에 푸피족의 월평균 경상소득은 51만원에서 63만원으로 증가했지만,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할 경우 푸피족의 월평균 시장소득은 2006년 39만원에서 2014년 33만원으로 감소했네. 공적이전소득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노인들이 많다는 뜻이야.

우리나라 노인들은 평생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일자리가 없으면 폐지라도 주어야지만 마음이 편한 착한 노인들인데도 그들은 왜 다른 나라 노인들에 비해 힘들게 말년을 보내고 있을까? 그들에게 빛을 되찾고 국권을 회복했다는 광복(光復)의 의미는 뭘까? 그들은 가난이 자신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을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압축 근대(compressed modernity)를 하느라 생략해버린 서양 계몽주의 정신의 학습이 아닐까? 왜냐고? 우리는 개인의 권리의식 측면에서는 아직 ‘미성년 상태’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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