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추석 연휴 잘 보내고 있는가? 젊었을 적 추석에는 긴팔 옷을 입을 정도로 꽤 선선했는데 지금은 왜 이리 더운지? 아침과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지만 낮에는 너무 더워서 바깥 나들이하기도 힘들었네. 기상청에 따르면 추석날 서울의 최고 기온이 29.8℃를 기록하는 등 50년 만에 가장 더운 9월 하순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더군. 우리나라 기상청에서는 ‘일 평균기온이 20℃ 미만으로 유지되기 시작한 첫날’을 ‘가을 시작일’이라고 부르는데, 수도권의 경우 1970년대에는 9월 15일 쯤에 시작됐던 가을이 2000년대에는 9월 26로 늦춰졌다고 하네. 지난 30여 년 동안 무려 10일이 늦어진 거지.

반면에 일 평균기온이 섭씨 20℃ 이상을 유지하기 시작하는 날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예전보다 더 일찍 왔다가 더 늦게 가는 계절이 되었네. 서울의 경우, 1950년대에는 6월 11일이 ‘여름 시작일’이었는데, 2000년대에는 5월 27일로 무려 15일이 빨라졌네. 여름의 지속 기간도 지난 50년 동안 20일 정도 길어졌네. 1950년대에는 101일이었던 여름이 2000년대에 들어서 121일이 된 거야. 일 년 365일 중 3분의 1이 여름인 거지. 아무튼 우리는 앞으로 기상학적으로 ‘일 평균기온이 20~25℃이고 일 최고기온이 25℃ 이상’인 늦여름에 추석 명절을 쇠는 해가 더 많아질 걸세. 가을 한가위가 아니고 여름 한가위라니… 

한반도의 여름이 왜 이렇게 길어지고 있을까? 물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지.  자연을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을 위해 개발하고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자원으로만 간주했던 근대화로 인한 환경 파괴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구가 직면한 문제가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아서 걱정일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질과 대기오염, 열대다우림 파괴, 동식물 종의 감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산성비, 오존층 파괴 등이 환경위기의 주요 쟁점이었는데, 최근에는 생물학자들 사이에 6번째 ‘대멸종’ 이야기가 나오고 있네.  38억 년 전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다섯번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2200년대에 여섯번째 대멸종이 일어난다는 거야. 이미 지구에서 동물이 멸종되는 속도는 6000만 년 전보다 무려 1000배나 빨라졌다고 하네.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전문매체인 네이처(Nature)가 주관했던 연구에서 나온 예측일세.

우리 지구가 직면한 환경 위기가 매우 심각한 건 분명한가 보네.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월 25일 제70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생태위기에 더 많은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을 “권력과 물질적인 번영”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창조주로부터 온 사랑의 과실”인 지구를 누구도 “파괴하거나 남용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네. 돈에 목말라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약하고 빈곤한 계층을 더욱 배제시키는 중대한 죄"라고도 지적했어. 교황은 "생태의 위기와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대규모 파괴가 인류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오는 12월에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합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네.  

27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유엔 개발정상회의 연설에서 "오는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지구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역설했네. 오바마도 기후변화에는 모든 국가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해면 상승과 가뭄의 심화 등으로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더군. 지금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면 곧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난민들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고일세.

그런데 우리는 전 지구적인 환경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경제성장’만을 지고지선(至高至善)으로 떠받드는 나라에 살고 있네. 대통령에서 야당지도자들까지 정당과 지역에 관계없이 국민 거의 모두가 ‘성장’만을 외치는 특이한 나라야. 멀쩡하게 잘 흐르던 강물이 시멘트로 만든 보에 갇혀 썩어도, 2주 동안의 올림픽 땜에 500년 이상 된 원시림이 망가져도,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사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호텔을 지어도, 돈만 벌고 경제만 성장한다면 좋다는 나라가 대한민국일세. 그런 나라 사람들에게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신의 창조물인 지구를 후세대에 넘겨줄 수 있도록 보존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교황의 말씀이 들리겠는가?

법정 스님의 <산에서 꽃이 피네>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번 편지를 마치고 싶네. “자연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사람이 기댈 영원한 품이다. 또 자연은 잘못된 현대 문명의 유일한 해독제이다. 하늘과 구름, 별과 이슬과 바람, 흙과 강물, 햇살과 바다, 나무와 짐승과 새들, 길섶에 피어 있는 하잘 것 없는 풀꽃이라도 그것은 우주적인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건성으로 보지 말고 유심히 바라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신비성과 아름다움을 캐낼 수가 있다.”

점점 늦게 찾아오는 가을을 알차게 즐기시게나. 지금처럼 오색 단풍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이 땅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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