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여야 불문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상주 역할을 자처하며 YS의 차남 김현철 교수와 빈소를 지키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너무 쉽게 가셨다.” 김현철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임교수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부친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하자 그는 줄곧 병원에 남아 장례를 준비했다. 모친 손명순 여사에겐 이날 아침에서야 YS의 서거 소식을 전했다. 충격에 빠진 손명순 여사는 걸음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슬픔을 온몸으로 드러냈지만, 김현철 교수는 상주로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후 오전 8시30분께 또 다른 상주가 빈소를 찾았다. YS를 ‘정치적 스승’으로 부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눈물로 조문을 마친 그는 김현철 교수 옆 상주 자리에 섰다.

장면 1. 김무성의 눈물 “저는 YS의 정치적 아들”

김무성 대표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 울음을 참는 모양이었다. 종종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하지만 김현철 교수를 도와 상주로서 조문객을 맞았고, 빈소 밖에선 긴밀한 논의를 이어갔다. 앞서 김무성 대표는 자신을 “YS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설명하며 “고인 가는 길에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밝혔다.

때문일까. 김무성 대표는 서청원 최고위원과 마찰을 피했다. 사실 두 사람은 대표적 상도동계 출신으로, 정치적 뿌리가 같다. 하지만 각각 비박과 친박의 최전선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 왔던 터다. 지난 19일에도 비공개 회동을 가졌으나 빈손으로 헤어져야 했다. 서로에게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YS의 빈소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말을 아꼈다. 서청원 최고위원 역시 이날 조문에서 “대한민국의 큰 별이 가셨다”며 애통한 마음을 표현했다.

장면 2. MB와 문재인의 깜짝 조우… 말없이 악수만

▲ YS의 빈소 앞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조우하는 상황이 벌어져 장내가 잠시 술렁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 뒤 바로 헤어졌다. <사진=뉴시스>

조용하던 빈소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조문 때문이다. 이날 이른 아침 페이스북을 통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빈자리가 매우 크게 느껴진다”며 조의를 표시했던 MB는 오전 10시50분께 빈소에 도착했다. 앞서 장례식장에 도착했던 임태희 전 비서실장과 이동관 전 홍보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도 MB와 함께 빈소에 들어섰다.

YS를 향한 MB의 의미도 남달랐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YS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것. MB가 YS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용기를 주신 분”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빈소에서 “(YS가) 병원에 계실 때 ‘꼭 완쾌해서 전직 대통령끼리 자주 뵙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그렇게 못하셨다”면서 “이 나라의 마지막 남은 민주화의 상징이 떠나셨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선진 민주주의, 선진 산업화를 잘 이뤄나가야 한다. 그게 YS의 꿈을 완성하게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MB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찰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빈소를 찾았다. 두 사람의 조우에 취재진들이 술렁였으나, 의미 없는 만남이었다. MB와 문재인 대표는 살짝 웃는 얼굴을 보였으나, 말없이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문재인 대표는 당초 강원도 방문 일정이 예정됐으나 YS의 서거로 전면 연기했다.

조문을 마친 문재인 대표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YS의 민주주의 정신과 철학을 강조한 뒤 “지금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민주화 운동을 이끄셨던 YS가 떠나신 것이 너무 아쉽다”면서 “이제 우리 후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더 잘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장면 3. ‘오른팔’ 최형우의 오열… YS계 결집하나

▲ 김현철 교수가 빈소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최형우 전 내무장관을 YS의 영정 앞으로 모셨다. 최형우 전 장관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사진=소미연 기자>

80세 백발의 노인도 YS의 빈소 앞에선 울부짖었다. 결국 김현철 교수가 빈소 밖까지 나와 노인을 모셨다. 주변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빈소에 도착한 노인은 YS의 영정사진을 보고 끝내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 울었다. 노인은 바로 YS의 오른팔로 알려진 최형우 전 내무장관이다. 함께 빈소를 찾은 부인 원영일 여사는 “(최형우 전 장관이) 충격을 받아 걸음을 못 걷는다”면서 혹여 쓰러질까 걱정했다.

정치 일선에 물러나 지금은 잊혀진 인물이지만, 과거 최형우 전 장관은 문민정부의 2인자로 통했다.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좌(左)형우 우(右)동영’이라 불리며 YS의 최측근으로 불렸고, 1996년 총선에서 6선 고지를 밟았을 당시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1997년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힘겨루기를 했으나, 갑작스런 중풍으로 대선가도에서 멀어졌다. 그의 흐느낌이 정치 뒤안길에 있던 YS계를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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