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늦은 밤 불쑥 울린 짧은 문자/ 보고 싶구나/ 오십 줄로 들어선 오래된 친구/ 가슴이 철렁 한참을 들여다본다/ 가만 가만 글자들을 따라 읽는다/ 글자마다 지독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한 시절 뜨거웠던 시간이 깨어났을까/ 생기에 찬 젊은 내가 아른거렸을까/ 빈 여백에 고단함이 배었다/ 너무 외로워서 119에 수백 번 허위신고 했다던/ 칠순 노인의 뉴스가 스쳐가며/ 나도 벽을 빽빽한 책들을 어루만지거나 마른 장미꽃에게/ 술 한 잔 건네며 중얼거리는 날이 늘어가니/ 사지육신 멀쩡해도 더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늙는다는 것 늙었다는 것/ 밥만 축내는 잉여인간으로 냉대하는데/ 몸도 마음도 다 내어주고 아무것도 없는/ 삼류들에게/ 추억은 왕년의 젊음은 쓸쓸함을 더하는 독주/ 그저 독주를 들이키며 생매장당해야 하는 현실은/ 도대체 예의가 없다/ 나는 오랫동안 끝내 답장을 하지 못한다
 
김사이 시인의 <보고 싶구나>라는 시일세. 오십 줄에 들어선 오래된 친구가 “보고 싶구나”라고 적어 보낸 문자를 보면서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야. 이순을 넘으면서 늙는다는 게 분명 씁쓸한 일임을 조금씩 깨쳐 가고 있네.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걸 보면서 겪는 고통도 작은 게 아니고. 벌써 '너무 외로워서 119에 수백 번 허위신고 했다던 칠순 노인의 뉴스'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가 않아. 하지만 ‘추억’을, ‘왕년의 젊음’을 독주처럼 마시면서 쓸쓸해하거나 누굴 원망할 나이는 아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네. “사지육신 멀쩡해도 더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들 누가 들어주지도 않고, “밥만 축내는 잉여인간으로 냉대한다”고, “도대체 예의가 없다”고 세상 탓해봤자 자신만 더 추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일세.
 
나도 사람인지라 나이 들면서 늙는다는 걸 자주 생각하게 되네. 어떻게 늙어야 잘 늙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자문하게 되고. 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분들이 칠십은 ‘노인’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떠들더군.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그렇게 떠드는 게 이미 노인임을 보여주는 징표일세. 난 누구나 나이 들면 늙고, 늙으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일세. 젊은이들 못지않게 건강하다고 말하는 건 일종의 오기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세월이 가면 늙을 수밖에 없네. 그게 자연의 법칙이야.

그래서 나이가 들면 곱게 늙는 연습,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하나하나 줄이고 버리는 연습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고 계속 모으려고만 하네. 계속 결핍을 채우려고만 하니 세상이 예의가 없고 무정하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이제 노인들이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대오각성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네. 나이가 들어서도 ‘밥만 축내는 잉여인간’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일만 하지 말고, 노년을 인간답게 보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때일세. 그러면서 스스로 민주시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가지면 더 좋겠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에 발간한 한 보고서(Pensions at a Glance 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하지만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네. 한국 남자들이 경제활동에서 물러나는 ‘실질 은퇴연령’은 72.9세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었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일하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72세)뿐이야. 한국 여자들의 처지는 더 심각해. 실제 은퇴 시기가 70.6세인데, 70세 넘어서까지 일하는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야. OECD 전체 회원국의 남녀 평균 은퇴 나이는 각각 64.6세와 63.1세로 한국 노인들보다 각각 8.3년과 7.5년이 더 빨랐네.
 
한국 노인들은 경제 활동을 그만 두는 시기가 늦으니 은퇴 후 사망할 때까지 쉬는 기간도 짧네. 노년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지내기 힘들다는 뜻이지. OECD 회원국 노인들이 은퇴 후 노는 기간이 남성 17.6년, 여성 22.3년인 반면, 한국은 남성이 11.4년 여성 16.6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았네. 심지어 아직 OECD 회원국이 아니고 기대수명도 한국보다 5세 정도 짧은 중국의 노인들보다도 더 짧다고 하네. 이렇게 늦게까지 일을 하는데도 2014년 노인빈곤율이 49.6%로 OECD 평균 12.6%보다 약 4배 정도나 높다니…

게다가, 통계청이 12월 3일에 발표한 ‘2014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들은 남자는 평균 14.1년, 여자는 19.6년 병을 안고 살다가 죽는다고 하네.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평균 나이가 남자는 64.9세, 여자는 65.9세까지라는 거야. 그런데도 일흔이 넘어서까지 일을 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니… 이게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클럽(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고 인구가 5000만이 넘는 나라)에 가입했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일세.

이래저래 우리나라 노인들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 『어쩌다 한국인 –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구먼. ‘한국인’을 ‘한국 노인’으로 바꿔서 읽어보게나. 내가 자주 하는 말을 저자인 허태균 교수도 하고 있어서 반갑더구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잘 놀아야만 한다네.

“결핍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다만 한국인들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낄 뿐이다. 이제는 결핍의 사회에서 성숙의 사회로 전환이 필요하다. 성장과 생산, 경쟁을 추구하는 결핍의 마음에서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우리의 마음속에 사회정의, 복지, 양극화 해소, 휴머니즘과 같은 개념이 들어설 수 있다. 한국인이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우선 잘 놀아보는 것이다. 이제 진심으로 놀아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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