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타이어.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죽음의 공장’이란 오명을 썼던 한국타이어에서 또 다시 사망자가 발생했다. 14년간 일해 온 30대 노동자가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결국 숨진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2007년 사고와 질환 등으로 1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각종 안전·보건 조치 및 산재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아 논란을 빚은 바 있으며, 최근에도 산재 은폐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곳이다.

◇ 첫 아이도 못보고 떠난 30대 노동자

지난 20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청원게시판에는 ‘만삭인 부인을 놔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너는 노동자’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받고 박OO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며칠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고향 동생이다. 내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왈칵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운을 뗀 뒤 “서른여덟 늦깎이에 인연을 만나 느지막이 아이도 임신해서 한편으로 기특하기도 했는데, 이제 한 달 남짓 해산할 딸아이도 보지 못하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형편이 좋지 않았다. 연로하고 병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정신지체 형 등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지만 연로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형을 때리는 형들에게 몸으로 막아섰는데”라며 고인의 어린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마지막에는 “박OO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출산을 앞둔 부인과 곧 태어날 아이,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할 노모와 돌봐야할 정신지체 형, 남겨진 슬픔을 감당해야할 추억을 공유한 우리들을 위해 적어봤다”며 “이 가족에게 제일 최선은 무엇일까.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글의 부제는 ‘한국타이어 산재신청이 이뤄지길 바라고, 고인의 명복을’이다.

◇ “한국타이어는 육지의 세월호”

이 글이 추모하고 있는 노동자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하던 고(故) 박모(38) 씨다. 14년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해 온 그는 지난 10월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 16일 새벽 영원히 눈을 감았다. 세상에 나오기 한 달여 정도 남은 첫 아이를 끝내 보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건강에 별 문제가 없던 박씨는 지난 10월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고, 병원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병세는 급속히 악화됐고, 두 달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산재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업무 도중 발암 물질에 노출돼 혈액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씨는 화물차용 타이어 생산라인에서 성형공정을 맡아왔는데, 이는 고무 등으로 이뤄진 원료에 압력 및 열을 가해 타이어를 생산하는 과정 중 하나다.

한국타이어 측은 “박씨의 사망 원인은 쯔쯔가무시 병에 의한 바이러스 혈구탐식증후군이다. 이는 회사가 아닌 병원에서 내린 진단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박응용 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한국타이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쯔쯔가무시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며 “숨진 박씨가 일한 공정은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치명적인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곳이다. 역학조사 등 철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현재 대전지방노동청에 이와 관련한 진정을 제출한 상태다.

주목되는 점은 한국타이어의 과거 행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2007년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사망하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약 1년여 사이에 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숫자는 나중에 15명까지 늘어났다. 질병과 사고, 자살 등에 의한 사망이었다.

특히 당시 진행된 특별근로감독결과에서는 총 1,394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이중 산재보고의무 위반은 160건이었고, 근로자 건강진단 사후관리 미실시도 570건에 달했다.

뿐만 아니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는 지난 2008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1996~2007년 10년간 한국타이어에서 각종 질환 및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93명에 달한다는 증언이었다.

비단 과거에 그치는 일도 아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10월에도 산재은폐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산재신청시 각종 불이익을 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통해 1%대의 놀라운 산재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응용 위원장은 “한국타이어 공장은 육지의 세월호라고 보면 된다”며 “제도 미비와 회사의 은폐로 인해 노동자들이 각종 심각한 질병에 노출돼있다.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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