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급기야 호남정치가 혼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과거 영남과 호남이라는 양대 산맥의 정치구도가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등으로 나누어졌지만, 호남정치 지형만 쪼그라지고 말았다. 호남정치를 대변하는 동교동계의 몰락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을 게다.

그러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유일하게 동교동계만이 쇠락했다는 얘기다. 얼마 전 안철수 의원과 동교동계의 이희호 여사가 나눈 대화가 회자됐다. 이 여사의 자식 김홍걸 씨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어머니가 특정정파를 지지한 적 없다’고 읍소한 것을 보면 호남정치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명색이 DJ아들인 김홍걸 씨가 아무리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해도 동교동계가 더민주를 탈당하겠다는 막판 상황에서 그의 행동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말하자면 문재인 대표가 혹여 다른 사람도 아닌 DJ 아들에게 그렇게 공천미끼를 던졌다면 호남정치를 두 번 죽인 것이나 다를 게 없다고 혹평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이렇게 대선주자가 한명도 없을 정도로 호남정치가 몰락 한 것은 따지고 보면 2003년부터다. 지난해 4·29재보선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 등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당시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다. 천 의원이 호남정치가 이렇게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것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고, 잘못됐다고 사과를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천 의원이 호남정치를 복원하겠다고, 뉴 DJ를 키운다고, 혁신의 정치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로는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정치행보를 해온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천 의원은 호남민들의 열정으로부터 멀어져만 갔고, 그래서 이제는 야권의 텃밭을 안철수 의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지난해 7·30재보선에서 당선된 권은희 의원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안 의원에게 가버린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더욱이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이 더민주를 대거 탈당하거나 하려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전남지역은 차지하고라도 광주는 통합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박주선 의원과 그 대척점에 있는 친노 강기정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 모두가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 우산 속으로 헤쳐 모이게 된다.

현역들의 탈당러시 속에서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이 상승한다 하더라도 호남민들이 그를 전적으로 반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간과해서는 안 될 두 가지 대목이 있기에 그렇다. 하나는 친노 척결이고, 다른 하나는 ‘신오적’ 척결에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윤장현 광주시장을 전략공천 하도록 앞장서 부추기고 광주시민들의 공천권을 빼앗아 간 광주지역 5명의 현역을 일컬어 소위 ‘신오적’이라 부른다. 안철수 의원으로서는 공천 패악질 제1호로 기록된 사안이다.

이들 신오적 가운데 친노 세력으로 분류되는 강기정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모두 안 의원의 품속으로 들어갔거나 들어갈 태세다.

강 의원의 경우 지난 주말 광주를 방문할 예정인 문재인 대표에게 “제발 광주로 내려오지 말라,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간곡하게 부탁했다고 한다. 강 의원의 요청이 먹혀들어 문 대표는 광주행을 접었지만 이는 강 의원의 속내가 그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광주의 반노 정서를 감안할 때 3선인 강 의원이 친노 옷을 입고 출마했을 경우 당선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노를 배신하고 뛰쳐나올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이제 나머지 현역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세 과시 차원에서 자신을 따르는 지방의원들에게 탈당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신오적들의 탈당 러시는 결과적으로 ‘안철수 신당 줄서기’와 다를 바 없다. ‘도로민주당’이 되면서 호남민심은 또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든 셈이다.

‘국민의당’ 이념 스펙트럼이 보수와 진보를 함께 아우르는 중도색깔로 거듭 태어난 것이기에 이명박 정권 때 한나라당 옷을 입고 광주시장으로 출마한 정용화 씨를 영입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영입대상으로 거론된 전직 장관 출신인 허신행·김동신 씨와 검사장 출신인 한승철 씨 등 이 지역 출신 세 사람을 영입하려 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가만있는 사람을 추천해놓고 일부 언론에서 떠들어 대자 비리의혹이 있다고 영입을 취소한 것이다. 이에 허 전 장관이 ‘인격살인’이라고 공개사과를 요구한 것은 어찌 보면 친노 프레임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겠다.

안철수 의원마저 영입대상자들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호남사람들에게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안철수 의원이 제2의 친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지역 연고지인 부산에서 지지율이 없는 상황에서 호남사람들이 양자로 데려와 몰표를 주고 기껏 키워놓으면 되레 호남을 폄하하고 홀대했던 사람들이 친노세력 아닌가. 그리고는 지역주의를 부추긴다고 매도한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의원은 부산보다는 호남에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서 무당층이 늘어난 점을 그냥 넘길 일이 아닐 성 싶다. 호남민들의 가슴 속에 아직 안철수 의원이 자리하지 못한 것은 그가 미덥지 못한데서다.

이제 안철수 의원의 제2 친노 조짐 속에 호남민들이 더욱 가증스럽게 생각한 것은 철새처럼 이리저리 권력의 부침에 따라 줄서기를 잘 하는 광주 현역 5명의 행보다.

이들 신오적들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윤 시장 전략공천을 짬짜미(담합)를 한 것도 모자라 지난번 새정치연합 당권도전에 나선 문재인 대표 앞으로 미리 줄서기를 했다. 당 대표가 바뀔 때마다 그 앞으로 영혼을 팔면서 기웃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는 다선 중진이고 초선이고 가릴 것 없이 지역을 대변하거나 진실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공천에만 목을 매왔다. 호남지역 출신 3선 의원을 서울로 차출해 낙선시키는 작태를 서슴지 않는 것도 모두 광주현역들이 제공한 셈이다. 대선 주자 가운데 호남정치인이 한명도 없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그런 신오적들이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이 뜨자 약삭빠르게 그 우산 속으로 숨고 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친노에 부역했던 광주지역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자리를 한 번 더 차지하고 싶어 안달인 셈이다. 하지만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갔다고 해서 이번 총선에서 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호남민심을 착각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신당과 신오적들의 공통분모를 들자면 호남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호남정치 복원은 안중에도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호남민심은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이제 남은 것은 신당창당 주체세력들이 공천권 지분 요구 등 기득권적 정치에서 벗어나 한 곳으로 모여야 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안철수, 천정배, 박준영, 박주선 등 신당통합 주체세력들이 각자 제갈 길로 더욱 멀리 간다면 호남정치 복원은 요원하게 될 게다. 이쯤에서 호남민들도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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