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갯속에 휩싸인 국회의사당. 마치 선거구획정 정국을 보는 듯하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국회가 헌법을 무시한 채 14일째 공전을 이어가고 있다. 여야 모두 말로는 “빨리 선거구획정을 마무리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믿는 ‘내부자들’은 거의 없다. 여야간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물밑 접촉도 없고, 그럴 예정도 당분간은 없기 때문이다. 입법기관이 초유의 선거구 공백사태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실 선거구 획정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다. ‘지역대표성’이라는 미명하에 농촌지역구 현행유지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당 출신 정개특위 위원장의 ‘중재안’까지 무시한 김무성 대표는 지역구 의석 253안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사이 더민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선거연령을 낮추는 방안까지 양보안을 제시했으나 김무성 대표는 끝내 수용하지 않고 있다. ‘출구’를 원하는 문재인 대표를 벼랑까지 몰고 있는 셈이다.

◇ 선거구획정은 ‘나몰라라’, 기득권 수호에는 ‘우리가 남이가’

그렇다고 문재인 대표가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김 대표의 고집 이면에는 ‘지역구를 확대하는 게 더민주도 좋은 게 아니냐’는 계산이 깔려있다. 실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연동형 비례대표가 무산된 상황에서 비례대표 보다는 지역구를 늘리는 것이 문 대표에게도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지역구가 줄어들 경우, 텃밭인 호남지역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새누리당이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면 문 대표는 왜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걸까. 한 가지 이유는 ‘명분 싸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 공백사태까지 초래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안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비난의 독박을 그대로 쓸 수 있다. 정치권에 회자되는 말처럼 ‘그림’이 좋지 않다.

또 하나는 안철수 신당의 부상이 거론된다. 호남권 의원들이 국민의당에 합류하고 있지만, 국민의당은 언제까지나 신당이다. 조직과 자금, 인물에서 기존 정당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거구획정이 미뤄질수록 신인들의 진입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당과 경쟁하는 더민주 입장에서는 서둘러 선거구획정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여야의 명분싸움과 기득권 지키기에 예비후보 등 신인정치인들은 답답하고 억울하다. 어디에 출마하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달랑 현수막 하나와 명함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그 사이 현역의원들은 지역조직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의정보고를 통해 사실상 마음껏 선거운동을 해왔다. 출발선부터 불공평한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여야가 예비후보 등록 재개와 정상적인 선거운동을 하도록 합의한 것도 조악하기 그지없다. 겉으로는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법상 현역의원들의 의정보고는 13일까지이고, 이후부터 선거운동을 하려면 현역도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한다. 사실상 현역들의 예비후보 등록과 선거운동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 초유의 선거구 공백사태와 관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뿐만 아니라 문재인 더민주 대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총선연기설까지 대두, ‘국민들은 국회 없애자고 하는 판’

이 같은 불공정한 경쟁에 일부 예비후보들이 선거일 연기를 주장했다. 선거법상 보장된 120일의 운동기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국회에서 최종 선거구획정이 끝난 날로부터 120일 후에 선거를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부 예비후보자들은 이미 헌법재판소에 연기 가처분 신청을 낸 상황이고, 심지어 일부는 선거가 끝난 뒤 불복소송을 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그러나 힘없는 예비후보들의 목소리는 널리 퍼지지 못했다.

다만 최근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권에서는 ‘선거 연기설’이 힘을 받고 있다. 14일 안철수 측 문병호 의원은 “(선거구 공백이) 현역들은 상관이 없겠지만 신인들에게는 굉장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아예 선거일자를 5월 달로 할 필요가 있다”고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일부 현역의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17대 국회에서도 획정문제로 선거일 한 달을 앞두고 마무리된 전례가 있고, 선거연기는 국가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제는 예비후보들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현역의원이라고 유리한 상황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물론 선거일 연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위법을 한 전례가 있다고 또다시 위법을 해도 괜찮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기득권 수호에만 매몰돼 합의기능을 상실한 국회의 존속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선일보>도 이 같은 초유의 선거구 공백사태에 대해 “국민은 (선거를) 연기할 게 아니라 아예 국회를 없애 버리자고까지 하는 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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